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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6주일 2011년 2월 13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1 조회수461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6주일    2011년 2월 13일.


마태 5, 17-3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가지게 된 것은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였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모세는 함께 계신 하느님을 존중하며 살기 위한 지침으로 율법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율법은 열 가지 지침으로 된 소위 십계명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 율법의 기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안정되면서, 그들은 그 십계명을 더 발전시켜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인간 삶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지침인 율법입니다. 당연히 율법의 조항들은 많아졌습니다. 조항들이 많아지면서 이스라엘은 율법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그것들을 문자대로 지키는 데만 골몰하였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숲은 잊어버리고 율법 조항이라는 나무에만 시선을 빼앗긴 꼴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한 율사들이 생기면서 율법의 조항들은 더 많아지고, 엄격히 지킬 것만 요구하는 율법이 되었습니다. 율사들은 율법의 자구(字句)를 절대화하여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그런 자세를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게로 시선을 가게 하는 율법이 되어야 한다고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킬 것만 강조하면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잊어버린 하느님을 되찾아 하느님이이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 조항 몇 개를 해석해 보이십니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만이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하십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소중히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해치지 않으십니다. 그와 반대로 하느님은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이라는 숲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라는 나무만 보고 서로를 비교하면, 나무들 간의 각종 차별이 돋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이시면 이웃은 모두 형제자매로 보입니다. 형제자매는 서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해석하십니다. 이성(異性)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욕망을 기준으로 이성을 볼 것이 아니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기준으로 이성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축복하고 배려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성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축복하고 배려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시대 유대인들의 관행인 이혼법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그 시대의 이혼법은 아내가 싫어지면 남편이 이혼장을 써주고 내보냅니다. 여성이 학대받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배려하시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기 배우자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율법 조항에 대해 해석하십니다. 거짓 맹세만 아니라,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자기의 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겠다는 행위가 맹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말이나 행위를 절대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인에게는 아버지이신 하느님만이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든 판단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맹세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약성서가 율법을 하느님이 주셨다고 말하는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각하면서 발생한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존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 지침인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만든 지침입니다. 따라서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달라지면, 그 지침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같은 하느님이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이 달라지면, 그분과 함께 사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몽매하였을 때, 그들은 높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신앙은 교회가 주는 교리를 믿고, 계명을 지키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람들은 각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삽니다. 이런 여건에서 신앙생활은 각자가 하느님에 대해 듣고, 자유롭게 선택하여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축복하고 배려하시는 분이라, 신앙인 각자가 자유롭게 실천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두려워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각종 재해를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런 재해가 어떤 조화로 발생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배하거나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율법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하느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각하며 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지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웃을 축복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참으로 자유롭게 사는 길이고 율법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이웃과 경쟁하고 이웃을 비난하는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앞에 자유로운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자유로운 세계에도 십자가는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 혹은 대자연이 만드는 그늘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혹은 대자연의 조화가 잘못 되어 생기는 그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들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였을 때, 발생한 그늘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그것을 감수하셨습니다. 신앙공동체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그늘이 있어도 우리는 축복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참다운 자유를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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