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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13일 야곱의 우물- 마태5, 17-37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3 조회수419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 마음 안에 진정한 그리스교적 지혜를 불어넣으시어, 주님 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온 마음으로 지키게 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우리가 듣는 긴 복음 말씀에서 마태오는 유다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질문에 답변합니다. 어떻게 성경과 유다 전통에 충실할 수 있는가 ? 마태오는 진정한 유다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과거의 율법이 충만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 새로운 율법을 소개하지 않고,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밝혀주시면서 제자들이 문자가 아니라 그 정신에 순종하고 살도록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율법을 삶에 적용해야하는지 예를 들어주는 여섯 가지는 모두 인간의 내적 태도와 동기를 들여다보라는 초대인데, 무엇보다도 화해를 위해 일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마태 5, 21 – 26)
예수님은 직접 행동에 옮기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화, 멸시, 형제애를 파괴하는 것도 내적인 살인이므로 단호하게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습관처럼 화가 나있을 때가 많습니다. ‘바보요, 정신 나간 사람들’ 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합니다. 우리한테 아무 쓸모도 없고 줄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마음 안에서 무시하거나, 그것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을 비참하게 하거나 초라하게 느끼게 하면서도 아무 죄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죄들은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평화를 건설하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파괴하고,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점에서 개인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죽음을 가져옵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는 예수님의 정신을 명확하게 요약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1요한 3, 15) 인생에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인간은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습니다.
(집회 15, 17)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사람입니다. (1요한 3, 14 참조) 마태오는 두드러지게 이 본문에서 “형제” 라는 단어를 되풀이하는 데 (22절 두 차례; 23절; 24절), 아마도 마태오의 초점이 형제애를 이루는 데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던 마태오 공동체 자체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살인 행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마태오는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는 예배 행위가 화해하지 않은 형제와 화해하러 가는 행위 때문에 중단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성찰해보도록 초대합니다. 마태오는 먼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는 하느님께 적절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사야도 같은 생각을 말합니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 내 눈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이사 1, 12 – 17 참조)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먼저 우리가 기꺼이 화해하려는 길을 찾고, 우리가 더 이상 타협의 여지도 없는 완고한 마음을 지님으로써, 우리 편에서 화해에 장애물을 놓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 전체는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에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예언서나 충실한 유다인이라면 동의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마태오가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예수님 자신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오는 이 계명에 담긴 내적인 정신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초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온유했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으며, 그분이 어떻게 화해를 가져왔는지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차갑고 이기적이고 굳은 마음은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 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 29) 인생은 화해의 여정입니다. 화해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서로 참아주고 화해하며 형제애를 살지 않는다면, 결국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Meditatio)
시편 119편에서 ‘말씀’ 을 ‘예수 그리스도’ 와 바꾸어 천천히 읽을 때, 우리는 “율법의 완성” (로마 10, 4) 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관상할 수 있습니다. 그 시편 안에서 예수님의 인격이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진정한 율법입니다.

기도 (Oratio)
당신 종에게 선을 베푸소서. 제가 살아 당신 말씀을 지키오리다. 제 눈을 열어주소서. 당신 가르침의 기적들을 제가 바라보오리다. (시편 119, 17 – 18)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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