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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5 조회수1,094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2월 15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Watch out,
guard against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the leaven of Herod.
(Mk.8.15) 
 
 
제1독서 창세기 6,5-8; 7,1-5.10
복음 마르코 8,14-21
 
어제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공부와 사목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동창 신부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2000년에 한국을 떠나서 생활하다가 2011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희 동창들은 환영파티 겸 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본당 근처의 호프집에서 2차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호프집 사장님이 교우이신데, 동창 신부가 저를 가리키며 “이 신부님 아시죠? 빠다킹 신부에요.”라고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장님께서 저를 전혀 모르신다는 것이었지요. 동창 신부는 해외에서도 저를 아는 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는 가톨릭 신자라면 다 알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함께 갔던 다른 신부를 더 잘 아시더군요. 그래서 동창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빠다킹이 상당히 유명한 줄 알았더니만, 별 것 아니구만.”

저 역시 인터넷을 보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보아주시고, 또한 이곳저곳으로 스크랩을 해주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말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서 내세울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을 뛰어 넘어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낮추어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사실 우리들은 말로는 주님께 온전히 의탁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주 작은 것에도 쉽게 흔들리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처럼 말이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빵의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 빵 일곱 개를 가지고서도 사천 명이 부족함 없이 먹게 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빵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야말로 참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배 안에 빵 하나밖에 없음을 알고는 곧바로 빵이 없다고 걱정의 수군거림을 하게 되지요.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의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혼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내 재능의 발전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님이 나를 더 많이 알아주셔야 하고, 이러한 주님께 나를 온전히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잊지 않는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합시다.

 

유머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괴로움과 비참함을 이해하는 것이며 약점과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또한 웃음은 또 자유를 뜻하기도 합니다.(마틴 그로찬)





기회는 한 번 더(김남훈, ‘청춘 매뉴얼 제작소’ 중에서)

2010년, 내 프로레슬링 경력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경기 상대는 베테랑 파이터 쇼지 아키라였다. 데뷔전 상대로는 다소 벅찬 듯했지만, 내가 가진 기량을 모두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입장하기 전 소개 비디오가 전광판에 상영됐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악역 한국인 레슬러, 그러면서 일본 선수를 도발하는 아주 이례적인 캐릭터로, 관중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경기가 시작된 지 20여 분 후 링 바닥을 양손으로 몇 번 내리치고 대기실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승패를 떠나서 경기 내용이 대실패였다. 낙법도 제대로 못했고 기술도 실패했다. 주도권을 내준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줄창 얻어맞고 내려온 게 전부였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팬들과 어우러져 같이 건배하는 자리에서 나는 겸연쩍어 벽 쪽에 붙어 서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어떤 40대 남성이 나를 알아보는 척하더니 곁에 와서 술을 따라주었다.

“곤도 츠요이 김상오 미타이데스(다음에는 강한 김남훈을 보고 싶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면서 계속 되뇌었다. 강한 김남훈. 아마 그도 내 경기를 보고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나에게 좀 더 힘을 내라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 세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꽤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중엔 어이없는 것도 있고 꽤 심각한 것도 있었지만 항상 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줬던 것 같다. 그 기회는 그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의 기대와 응원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기회는 한 번 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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