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예식은 허식(虛飾)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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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060 | 추천수0 | |
예식은 허식(虛飾)인가?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준비하는 예비자입니다. 가톨릭 교회에 다니면서, 이전에 가 보았던 개신교와 비교할 때 가장 눈에 띄게 차이나는 점이 전례인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예식들이 허례허식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일부 신자들이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예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에서 예절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예식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을 이렇게 둘로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에 대한 수많은 철학적, 심리학적, 생리학적, 종교적 논의가 있어 왔지만, 물과 기름처럼 인간을 육체와 정신(영혼)으로 딱 부러지게 구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둘은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학문은 발전하여 왔습니다.
하나이자 둘인 육체와 정신
사람들은 흔히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약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신 건강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정신 건강이 나쁠 때 몸도 약해지고, 정신이 건전할 때 육신의 건강도 좋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체험하고 있습니다. 몸이 쇠약해지면 헛것이 보인다거나, 마음이 밝으면 몸의 상태도 좋아진다거나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과 육체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몸과 말로 마음을 표현함
사람이 순전히 영으로만 되어 있는 존재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상대의 마음 안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말이나 몸을 통해서만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 의사 전달에 있어 말만 가지고도 되지 않고 몸과 말이 함께 협력해야 어느 정도 제대로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말과 동작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본래의 뜻을 도저히 헤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해까지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멍한 눈짓을 한다거나 상대방을 앞에 놓고 전화를 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여자는 그의 본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따뜻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말로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몸동작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례 안에서의 예식은 우리 신앙의 표현 사정이 이러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올바른 몸 동작(예절, 예식)에 대한 전통이 나름대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인간이 모인 집단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때 말과 글로써는 부족함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 자신의 신앙을 드러낼 수 있는 동작(예식, 예절)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전례 예식의 기원이 됩니다.
물론 예식은 말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형태로 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정된 형태의 예식이란 있을 수 없고 각 집단이 자기네 사정에 맞는 몸짓을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리하여 각 지역마다 자기네 고유의 전례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형태는 서로 달랐어도 이러한 몸짓은 여전히 고유한 신앙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예식이 허식이 되는 까닭
신앙을 표현하는 몸짓들은 점차 고정된 형태로 변해 가면서 하나의 예식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수많은 몸짓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적 몸짓이 이러한 예식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편화된 예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칠 수도 없을 뿐더러, 특히나 자신의 마음을 이 예식이란 그릇에 담지 않을 때 예식은 빈껍데기(허식)가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 예식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예식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식이 허식이 되는 까닭의 대부분은 우리 마음을 예식 안에 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식이 참된 신앙의 표현이 되려면
육체와 상관없이 마음만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도통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정신 세계 안에서 세상을 모두 꿰뚫어 보기 때문에 도인에게는 예식이나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는 몸을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몸동작을 진지한 태도로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 합장하는 자세 하나라도 마음을 모아 한다거나, 서서 복음을 들을 때 자세를 가다듬거나 함으로써 우리 신앙을 좀더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의복이나 장식품 역시 이러한 몸동작의 한 부분이라 할 때, 이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전례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동작, 몸짓은 얼마나 진지하고 정성이 담겨져 있습니까? 전례가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혹시 나의 몸짓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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