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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7 조회수934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said to him in reply,
“You are the Christ.”
(Mk.8.29-30)
 
 
제 1독서 창세 9,1-13
복음 마르 8,27-33
 
 성탄절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네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선물을 사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거리는 온통 반짝이는 불빛과 즐거운 캐럴송으로 가득 차 있어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졌고, 당연히 아이도 기분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장난감 가게 앞에 멈춰 섰을 때 어머니는 예쁜 인형을 발견하고는 아이의 손을 잡아당겼지요. 그런데 아이는 가게로 들어가지 않고 자꾸만 어머니 뒤로만 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의 표정을 보니 울먹이며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만 갸우뚱거렸는데 아이의 신발 끈 한쪽이 풀어져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런, 신발 끈이 풀어졌구나. 엄마가 매줄게.”

 어머니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신발 끈을 매주고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글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난감이 가득한 가게도, 화려한 조명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보니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굵은 다리와 신발만 보일 뿐이었지요.

 그제야 어머니는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울상을 지었던 이유도 알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이나 사물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보는 각도만 정확하다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눈높이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눈높이 사랑을 원하십니다. 즉, 당신과 우리가 같은 시선을 맞추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수님께 내 뜻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나의 시선에 맞추라고 하고 있지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역시 자신의 시선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면서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를 생각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래 처음부터 줄곧 거부해 오셨고 가장 엄하게 단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꾸중을 듣기까지 합니다.

 지금 나는 과연 예수님과 눈높이 사랑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의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나 역시도 예수님처럼 심한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과 눈높이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는 우리의 자유가 아니다.(코르네유)





 대제사장과 군인들에게 연행되기 전, 마지막으로 12명의 제자들과 만찬을 가진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시대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1491년부터 1498년까지 무려 7년간의 기간 동안 그려진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1491년,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를 그릴 유명한 화가를 찾던 로마 교황청은 당시 이태리에서 명성이 높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불러 ‘성서 속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광경을 벽화로 그려줄 것’을 부탁합니다. 부탁을 받은 다빈치는 그때부터 실제로 그림의 모델로 쓰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하며, 오랜 엄선 끝에 1492년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수 있는 깨끗하고 선하게 생긴 19세의 젊은이를 찾은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6년 동안 예수의 11명 제자그림을 모두 다 완성한 다빈치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밀고한 배반자인 유다의 모델을 찾아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유다의 모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된 로마의 시장은 ‘로마의 지하 감옥 속에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 명의 죄수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한번 모델을 찾아보라'는 제안했습니다. 다빈치는 그 제안에 따라 죄수 중에서 얼굴이 야위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 온데다가 죄악을 찾아 헤매는 듯 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여 유다의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그 그림을 완성한 날, 이 죄인은 다빈치에게 완성된 ‘최후의 만찬’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저기 저 그림 속에 그려진……. 6년 전 예수님의 모델이 바로 나였습니다.”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사의 얼굴도, 또 반대로 악마의 얼굴도 간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지요. 바로 자기 자신만을 쳐다보아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생각과 행동을 지향하다가도 어느 순간 악한 생각과 행동으로 향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요? 하긴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 역시 그랬지요.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교회의 반석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가 ‘사탄’이라는 독설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맞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모습이 유다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무엇에 관심을 두고, 또한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의 모습을 간직할 수도 반대로 사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내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지금 나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어떤 일에 나의 마음이 빼앗겨 있는지를……. 나는 지금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는지……. 
 
 

 
 
 
L'amour r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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