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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닮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8 조회수562 추천수8 반대(0) 신고
    복음: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34ㅡ9,1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9,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예닮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내 뒤를 따르려면'입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자신을 버리고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일들은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훌륭하고 위대한 일이긴 하지만...)

     

     

    흔히 십자가를 설명할 때, 며느리가 시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예로 들거나,

    부모가 장애자 자녀를 키우는 일을 예로 들거나 하는데,

    그런 일들은 신자가 아니라도 많이 하는 일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효자 효부가 많고 장한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합니다.

    효자, 효부, 장한 부모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십자가라고 말할 수 있기는 한데,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뒤따른다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종교박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유대교 신자들이 받은 박해를 십자가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십자가라는 말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 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극기 고행을 하고 수련을 하고 있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해탈을 해서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것이라면,

    그가 참고 견디는 고통은 결코 십자가가 될 수 없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어떤 탑을 쌓았는데,

    알고 보니 그 탑이 바벨탑이었다고 한다면, 그 탑은 그냥 바벨탑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탑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너무 배타적인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뒤따르는 삶이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 삶에서 예수님이 없다면 그건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도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걸 다 가치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길이라면,

    예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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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제로 살기 위해서 극기 고행을 하는 것이지

    극기 고행을 하기 위해서 사제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을 잊어버리면 자아도취에 빠집니다.

    그리스도교가 십자가를 많이 강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숭배하는 종교는 아닙니다.

    만일에 고통을 숭배하고 중시한다면 그건 '피학 변태'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위해서 일부러 극기 고행을 하는 것과

    자기의 극기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려고 도보 성지 순례를 하는 것과

    체력 단련을 하려고 운동 삼아서, 또는 산책을 하려고

    걸어서 성지까지 가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가지고 있던 차비를 술값으로 써버려서 어쩔 수 없이 성지까지 걸어갔다면,

    그건 극기 고행이 아니라, 그냥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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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왜 꼭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그건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십자가를 빼고는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필수과목입니다.

     

     

    필수과목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것인데,

    제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교양과목이나 선택과목은 참 잘했는데,

    전공 필수과목은 아주 못했습니다.

    그래도 성적이 좋은 과목들 때문에 평점은 높았고, 계속 장학금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공 실력은 형편없다는 것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명색이 금속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 금속공학 성적은 나쁘고

    정치학이나 문화사는 잘 알고 있었으니, 또 전공 책은 안 보고 성경만 읽고 있었으니,

    아무리 평점이 높고 장학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졸업한 다음에 참 딱한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신학교에 다시 입학했으니

    금속공학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려도 괜찮게 되었지만,

    어디 가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고 내세우지도 못합니다.

     

     

    신앙인의 필수과목은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도 필수과목입니다.

    그 나머지, 신학을 공부하거나 전례를 공부하거나

    성음악을 공부하는 일 등은 선택과목입니다.

    저의 신학교 전공은 역사신학(성서학)으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법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배운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성서학이라는 학문도 신앙인에게는 선택과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삶으로 사는 것은 필수과목이지만.)

     

     

    우리에게는 '죽으나 사나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필수과목입니다.

    쉽게 말하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는 그 순간,

    마리아는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존경하는 것은 학식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 믿음의 삶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된 순간

    그들은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도들을 존경하는 것은 학식이나 재능이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끝까지 뒤따랐다는 점 때문입니다.

     

     

    처음에 부모 봉양을 하는 며느리나 장애자 자녀를 둔 부모를 언급했는데,

    그런 부모가 없고 그런 자녀가 없는 사람은 십자가를 덜 지게 되는가?

    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입니다.

    누구에게나 각자 자기의 십자가가 있는 법입니다.

    크고 작고, 무겁고 가볍고를 따질 수 없습니다.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고,

    각자 자기 몫의 외로움이 있고,

    각자 자기 몫의 슬픔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을 충실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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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예닮'이라는 말은 '예수님 닮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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