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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길" - 2.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8 조회수39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18 연중 제6주간 금요일

창세11,1-9 마르8,34-9,1

 

 

 

 

 

 

"생명의 길"

 

 

 

홀대받고 착취당하는 땅(흙)이 갈수록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16일까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로

전국에서 소 15만726마리, 돼지 318만5116마리,

닭과 오리 545만4835마리, 염소 6148마리, 사슴 3053마리 등

모두 879만9878마리의 가축 역시 어머니 땅에 묻혔습니다.

세월 지나 결국 남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성공이란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배운 것, 지닌 것 없어도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참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하느님의 자식으로, 땅의 자식으로 살 때 좋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느님으로부터,

또 자연의 땅으로부터 떠나 자초한 화입니다.

애당초 하늘의 자식이자 땅의 자식인 사람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하느님과 자연을 떠나 죽음으로 치닫는 인간의 불행한 현실을 상징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현실성을 띠는 이야기입니다.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니

완전히 획일화된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어 전개되는 상황이 점입가경입니다.

한 자리에 자리 잡자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입니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하여 그들은 자연의 돌 대신 벽돌을, 진흙대신 역청을 사용함으로

자연에서 인위의 도시 건설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자연을 만들고 악마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의미심장한, 그러나 환상 속의 독립선언입니다.

하늘(하느님)과 땅(자연)에서 유리된 사상누각의 도시건설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습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목격되는 대형 건물들을 대할 때 마다

바벨탑이 연상되어 불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개성 없는 대형 건물에 묻혀

점차 왜소해져가고 초라해져가는 익명의 사람들입니다.

옛날처럼 자연과 조화되었던

그 고유의 고향 집도 사람들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자연을 잊을 때

저절로 대형화, 집단화, 획일화의 비인간화 추세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한술 더 떠 편리와 신속을 지향하다 보니

아름다운 산하(山河)도 점차 직선화, 평면화 되어가는 추세입니다.

‘느림과 살림’의 곡선과 높고 낮은, 크고 작은 것들의 공존의 조화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외화내빈의 현상들 바로 내적 공허를 반영합니다.

‘하느님의 자식’이자 ‘자연의 자식’인 사람이

하느님과 자연을 떠난 업보입니다.

이런 현상의 뿌리에 무지가 있습니다.

이 무지에서 기인하는 두려움과 불안, 탐욕이요

이의 표현이 허영과 교만이고 외적 대형화의 추세입니다.

두려움과 불안, 탐욕, 허영, 교만은 모두 ‘무지의 자식들’과도 같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 때

비로소 무지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중심의 자연과 조화된

자연친화적 겸손한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 두었다.”

 

대형 토목공사를 중단시키고 흩으심으로

‘죽임의 길’에서 ‘살림의 길’로 이끄시는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도 살림의 길, 생명의 길을 환히 보여 줍니다.

대형화, 집단화, 획일화, 평면화, 직선화의 죽임의 세상에서 벗어나

참 나로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은 다음의 길 하나뿐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세상을 얻을 들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 목숨을 살려 참 나를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은,

무지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하느님 중심으로 자연과 조화되어 살 수 있는 겸손의 길은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뿐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충실히 따라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사람들!” (시편33,12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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