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미사 때 영성체를 꼭 해야 하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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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842 | 추천수0 | |
미사 때 영성체를 꼭 해야 하나요?
신자로서 주일 미사에 꼬박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꼭 영성체를 해야 하는지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마음이 성체를 영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냥 미사만 참여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만, 이에 대한 신부님의 의견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미사 때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도 그 행위에서 어떤 의미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영성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매주일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모셔 보았지만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영성체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사제인 저 자신이 미사를 집전하다 보면, 신자들이 영성체할 때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실망스럽고도 허탈한 기분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문제들과 결부시켜 왜 미사 때 영성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님의 고민
예수님은 약 3년간에 걸친 설교 활동 끝에, 이제 당신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당신의 복음 선포 임무를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죽음, 이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여태껏 가르쳐 온 제자들이 아직도 당신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죽으면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임을 세 번씩이나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제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최후 만찬
유대교 지도자들이 당신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간파한 예수님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 선포가 중단되어서는 안되겠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항구히 기억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시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하시고는 아주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빵을 드실 때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하시고, 식사를 끝마치면서 입가심으로 포도주를 돌릴 때 다시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선언하시면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십자가 제사를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최후 만찬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어린양을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양을 성전 사제에게 "넘기면", 어린양의 목은 사제들의 칼에 찔려 피를 "흘렸습니다". 이렇게 어린양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는 도구로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최후 만찬에서 말씀하신 것은,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양의 처지와 비교하여 장차 당신이 당하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항구히 기억하게 만드는 성찬례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이 만찬에서 보여주신 행동을 그 즉시 이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뵙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성령강림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최후 만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강림 후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보여준 최후 만찬을 본떠 함께 모여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그분이 자기들에게 가르치신 바를 "기념"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예식은 얼마 안 있어 말씀 전례와 합하여 오늘의 미사(성찬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파스카 신비에 동참함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 때 사제를 중심으로 모여 "주님의 만찬"을 함께 나누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의 사건, 2,000년 전에 예수라는 한 개인에게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뜻하는 바를 지금 이 자리, 그분의 명에 따라 행하는 성찬례 안에서 되살리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그분의 죽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빵(성체)과 포도주(성혈)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부의 뜻에 따라 살리라는 결심을 다지며, 이 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것과 투쟁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증거하겠다는 세례성사 때의 약속을 다시 한번 결심합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로 열려진 구원의 여정이 완전히 완성되는 순간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합니다.
영성체를 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함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행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성체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靈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영성체 때 사제가 나누어 준 성체를 영하지 않고 집에 가져와 모셔 두거나 목걸이 함을 만들어 그 안에다 보관하여 걸고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체를 몸에 보관하기를 주장하는 이단이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있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죽음과 그분의 죽음이 뜻하는 바를 상기시킬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예수님 뒤를 따르라는 초대장과 같습니다. 불행히도 그 초대장은 행복에의 초대장이 아니라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라는 고통의 초대장입니다. 물론 그 고통 뒤에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체를 할 때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세례 때의 결심을 계속 반복하여 갱신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영성체를 하면서도 아무런 감흥도, 신앙 생활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거나 한다면, 일단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세례로써 구원의 완성에 다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있어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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