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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정의 메달" - 2.25,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25 조회수388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25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집회6,5-17 마르10,1-12

 

 

 

 

 

"우정의 메달"

 

 

 

제 둘째 형수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4-5명의 친구와 60년 이상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참 놀랍고 부럽습니다.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요 검증된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우정의 금메달감입니다.

사제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남매간의 관계의 정점은 우정의 친구관계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이상이라면 돈은 현실입니다.

 

사랑이 이상이라면 가난은 현실입니다.

 

결혼이 이상이라면 이혼은 현실입니다.

 

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이요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경솔하게 판단해선 안 됩니다.

‘연애는 황홀한 착각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난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성을 띤 말들입니다.

어제 만난 어느 자매님의 말도 생각납니다.

 

“남편이 사업이 안 될 때는 다 빠져 달아났던 분들이

  사업이 잘 되니까 어떻게 돈 냄새를 맡고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바로 이게 인간 현실입니다.

순수한 관계는 이상이고 대부분 이해관계의 사람들임을 봅니다.

주고받을 것이 없으면 저절로 관계는 단절됩니다.

이래서 노년에 이를수록 외롭고 쓸쓸해지는 것입니다.

하여 주님을 평생 벗으로 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창세기에 바탕 둔 이 말씀이 바로 하느님의 이상이요

예수님이 간절히 희망입니다.

이런 이상은 희망사항이자 요구사항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반 이혼 법을 제정한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성경을 봐도 이혼은 현실이고 오늘날의 비일비재한 이혼의 현실입니다.

누구의 탓도 아닌 도저히 결합될 수 없는 부부들을 대하면

‘그럴 수 있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아 이게 현실이구나.’

이혼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여 어느 혼인법 교수 신부님의 강의 마지막 결론 같은 말씀도 생각납니다.

 

“교회법을 총동원하여 꼭 살 사람은 살게 해주고,

  꼭 헤어져야 할 사람은 헤어지게 해줘라.”

 

서로 미워하면서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서로가 원한다면 서로 살기위해 이혼을 묵인하는 것이

현실에 바탕 둔 복음적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인생 가을까지 살아보지 않고

인생 봄이나 인생 여름에 판단내리는 것은 성급합니다.

수도성소나 결혼성소의 경우 둘 다 똑 같습니다.

수도서원 25주년이면 은경축을 하고 결혼 25주년이면 은혼식을 합니다.

삶의 은메달 확보로 그 자체로 성공이요 구원으로

후배들이나 자녀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이어 수도서원 50주년이면 금경축을 하고 결혼 50주년이면 금혼식을 합니다.

삶의 금메달입니다.

저는 올해 서원 은경축으로 은메달을 확보했지만

금경축의 금메달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은메달과 금메달은 서로간의 약속에 충실했을 때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메달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자주 예로 드는 일화가 있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십대부부는 꿈속에서 살고, 이십대 부부는 신나게 살고,

  삼십대 부부는 사랑하며 살고, 사십대 부부는 싸우며 살고,

  오십대 부부는 미워하면서 살고, 육십대 부부는 불쌍해서 살고,

  칠십대 부부는 고마워서 산다.”

 

이성의 연정에서 친구의 우정으로 익어가는

자연스런 성숙 과정을 보여줍니다.

봄 인생, 여름인생, 등 산전수전 중에 익어간 가을의 열매 같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의 우정의 열매입니다. 

구상 시인의 ‘노부부’라는 시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처참한 이해에 도달 했달까!

 

우리는

자신보다도 상대방을

더 잘 안다.

 

그리고 오히려

무언으로 말하고

말로써 침묵한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시시해지고

데데해져서 아주 초라해진 지금

두 사람은 안팎이

몹시 닮았다.

 

오가는 정이야 그저 해묵은 된장 맛.

하지만 이제사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

 

 

 

노부부의 아름답게 성숙된 부부간의 우정이나

수도 도반들 간의 성숙해 가는 우정이나 똑같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한 친구 간의 우정의 선물입니다.

마음이 맞아서, 성격이 같아서가 아닌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은총의 선물 같은 친구요 우정입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자신의 우정을 바르게 키워나가니,

  이웃도 그의 본을 따라 그대로 하리라.”

 

주님을 경외할 때

우리 또한 주님의 벗이 될 뿐 아니라 서로 좋은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의 우정을 깊게 하시며

서로 좋은 도반의 친구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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