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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27일 야곱의 우물- 마태6,24-34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27 조회수381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26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27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 28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31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 ‘무엇을 마실까 ?’, ‘무엇을 차려입을까 ?’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당신이 계신 곳에는 참 자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앞날의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우리 마음을 이끄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주제, 재물과 앞날의 걱정에 대해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칩니다.제자들은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24절은 19 – 23절의 가르침의 절정을 이룹니다. 신약성경시대의 노예는 그들의 모든 시간과 가진 모든 것이 주인에게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종이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힘들뿐 아니라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느님을 섬긴다면, 우리 마음은 순결해질 것이고, 우리 안에는 빛이 있을 것이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좋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재물을 섬기면, 우리 마음은 더럽게 되고, 우리 안에는 어둠이 있으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제자들은 하느님을 위해 근본적인 선택을 해야합니다.컴퍼스의 바늘처럼,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하느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고 걱정하지 말아야합니다.(6, 25 – 34)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앞날에 대한 걱정이 공통 주제가 되어버린 우리한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걱정하지 말라.’ 는 것은 단지 위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확고한 명령입니다. 심지어 음식이나 옷 같은 생활필수품마저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물질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세상 현실에 무감각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초점은 ‘당신의 인생은 하느님과 관계 있다.’ 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 높은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걱정하고 애를 태우는 것은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딸과 아들이며, 하느님이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습니다. 근심은 우리를 숨막히게 할 수 있습니다. (마태 13, 22) 결국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삶의 적절한 중심을 하느님께 두고 살아야 한다는 권고입니다. (필립 4, 6 – 9; 히브 13, 5)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활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우리의 부족한 믿음입니다.
 
걱정에 대한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새들은 굶어죽고, 백합도 꽃이 피기 전에 마르게 되는 것처럼 그분만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필요한 것을 청했던 사람들도 단지 기아와 굶주림, 전쟁과 박해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눈 앞에 둔 죽음을 앞두고 공포와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절망 안에서 하느님께 부르짖었으나 사형의 형벌을 당해야했습니다.
 
그럼에도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은 우리한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아시고 항상 그것을 제때에 마련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6, 8 참조) 우리는 이것이 사실임을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고난 중에 원했던 것과 그분에게 실제로 필요했던 것은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있던 그분에게 실제로 필요했던 것은 그분을 받쳐주고, 사랑 안에서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게 하고, 그분의 영을 하느님에게 봉헌할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의 눈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분의 마음은 하느님에게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신뢰를 지니도록, 우리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5, 3) 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묵상 (Meditatio)
예수님은 우리들이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써 오늘 우리가 겪는 문제와 어려움과 대결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루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다만 오늘 하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은 태어나지 않은 꿈이고, 어제는 우리 손에 다시 쥘 수 없습니다. 미래는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오늘을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 (Oratio)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리니 그분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시편 62, 2 – 3)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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