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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따라라" - 2.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28 조회수480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28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집회17,24-29 마르10,17-27

 

 

 

 

 

"나를 따라라"

 

 

 

집착이 클수록 상처도 큽니다.

죽음이 힘든 것은 집착의 끈들을 다 놓아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죽음 앞에서 모든 집착의 끈들을 놓아버려야 하니

바로 이게 연옥의 고통입니다.

하여 부단히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이탈의 수련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어제 복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씀인데

복음의 부자는 여기에서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 했지만 실상 재물을 섬긴 부자였습니다.

보이는 재물의 끈을 놓아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끈을 잡는 것이 믿음인데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자의 내면의 문제점을 직시한 영혼의 명의이신 주님의 예리한 처방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그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과연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부족한 것 하나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잡아매는 집착의 끈은 몇이나 될까요?

자식, 재물, 명예, 지위. 권력, 건강, 생명, 지식 등

수없이 많을 수 있습니다.

재물이 많았던 부자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합니다.

바로 이게 인간입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기는 이처럼 힘듭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집착에서 기인하기에

집착에서의 이탈로 구원의 열반을 추구하는 불자들입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어찌 부자뿐이겠습니까?

집착의 사람들에게는

자력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명쾌한 답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집착의 끈이 저절로 끊어질 때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재물 포기보다 어려운 것은

‘자기’포기의 순종이요

이 또한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하여 부단히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은총의 회개가, 이탈의 수련이, 순종의 삶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살아야 찬미와 감사이지 죽으면 찬미와 감사도 없습니다.

다음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살아서 감사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죽은 이에게서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있는 이는 주님을 찬미하리라.”

 

끊임없는 회개로 주님을 따르는 찬미와 감사의 삶일 때

저절로 이탈의 자유요 하느님 나라의 삶입니다.

죽음 준비에 이보다 더 좋은 수련도 없습니다.

점차 놓아버려야 할 집착의 끈들이요

마지막 까지 잡고 가야 할 하느님의 끈 믿음입니다.

매일 주님은

마음을 다해 당신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 에게

이탈의 자유를 주시어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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