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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01 조회수1,055 추천수2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1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Amen, I say to you,
there is no one who has given up house
or brothers or sisters
or mother or father or children or lands
for my sake and for the sake of the Gospel
who will not receive a hundred times more
now in this present age:
houses and brothers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eternal life in the age to come.
(Mk.10.28-31)
 
 
제1독서 집회서 35,1-15
복음 마르코 10,28-31
 
한 거지가 매일 천 원을 주는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늘 만 원씩 주셨는데, 작년에는 오천 원, 그리고 올해에는 또 천 원으로 줄이셨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이 신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까 여유가 있었지만, 작년에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이 말에 거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글쎄요. 이 거지의 말이 맞는 것인가요? 당연히 잘못된 궤변입니다. 이 신사는 사랑의 실천으로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 거지는 신사가 주는 매일 매일의 돈이 마치 자신의 돈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도 이 거지의 궤변을 끊임없이 내세우며 이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십니까? 숨을 쉴 수 있는 산소를 주셨고, 또한 낮에 활동할 수 있도록 빛을 그리고 밤에 잠 잘 수 있는 어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곡식이 잘 클 수 있도록 적절한 햇빛과 빗물 역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처럼 따지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님께 청할 뿐입니다. 아니 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왜 당연히 줘야 할 것을 주지 않으냐면서 불평과 불만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철저히 따르는 제자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말과 행동을 다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올바른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나중에 다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요.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현재 요구하는 것들은 대개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엊그제가 새해라고 기뻐했던 것 같은데 벌써 3월의 첫날을 맞이하는 이 새벽이지요. 이처럼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짧습니까?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짧은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만을 지향하며 살 뿐입니다.

이렇게 순간의 만족을 요구하기보다는 더 큰 영원한 생명이 있는 구원의 길을 쫓아야 합니다. 이 길을 향해 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첫째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 현명한 사람의 방법이다.(세르반테스)



 

세 명이 모이면(‘좋은생각’ 중에서)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 남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세 남자가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자 많은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야?”라며 일제히 하늘을 보았다. 왜 세 명이 모이면 상황이 바뀌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숫자 ‘3’에 상황을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 말한다. 세 명이 모이면 집단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 명이 같은 행동을 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3의 법칙’이다.

몇 년 전 수많은 사람이 전동차를 밀어 선로에 낀 남자를 구한 일에서도 3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승강장으로 달려오는 전동차에 가까이 다가가던 한 남자가 눈 깜작할 사이에 전동차와 승강장 틈으로 빠졌다. 이를 본 한 승객이 “전동차를 함께 밀어 봅시다!”라고 외쳤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지만 주위에 있던 두세 명이 전동차를 밀기 시작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승객들이 너도나도 전동차로 다가와 힘을 보탰고, 전동차에 타고 있던 승객까지 모두 내려 전동차를 밀었다. 결국 33톤의 전동차를 밀어 선로에 낀 남자를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가진 힘이 보잘 것 없어도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 하나둘 모이면 상황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Always In A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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