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이른 새벽, 따뜻한 이부자리를 뒤로하고 엉금엉금 일어나 알람시계 벨 소리를 매몰차게 꺼버렸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방은 춥고,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곳은 오직 이불 속뿐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수련소의 아침은 기도와 미사 봉헌, 식사로 이어지고 곧장 수련자들의 공동 사도직인 청소로 접어듭니다.
제가 담당한 구역은 정신과 병원의 남녀 화장실과 복도 이곳저곳 ! 병원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빨리 청소를 마쳐야 하므로 날마다 오전 일과는 참으로 분주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허술한 복장이지만 청소하기에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부터 열심히 청소를 시작합니다. 솔직히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는 집에서도 군대에 있을 때도 이렇게 열심히 청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남자인 제가 여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수도원에서 살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청소를 마치고 나갈 무렵, 어느 중년 신사께서 화장실 입구에서 혀를 차며 저한테 말씀을 건네십니다. “젊은이 월급 얼마나 받아요 ?” 순간 당황한 저는 제대로 답변도 못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수도 여정에서 쉼 없이 올라오는 첫째가 되고 싶은 교만함을 버리기 위해, 보다 더 낮아지는 훈련과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잘 따르려 했던 마음을 기억하고 오늘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이은명 수사(천주의 성요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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