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표징을 보여 주시고 다른 기적을 일으켜 주소서.
처음처럼 그들 각자에게 상속 재산을 나누어 주소서.
주님, 당신 이름을 지닌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안식처인 예루살렘에 자비를 보이소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보답을 주소서.
당신 백성에 대한 호의로 당신 종들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손님으로 온 외국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기도한 다음
거의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 있습니다.
"What is the meaning of the 'so so'?"
기도할 때 보면 자주 ‘-소서’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존경이 담긴
겸손한 기도의 끝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서’는 최고의 존경이 담긴 겸손한 기도의 끝말이고
그래서 말끝마다 우리가 하는 기도 말입니다.
오늘 집회서도 보면 ‘-소서’투성이입니다.
그런데 형태를 보면 존경과 겸손의 청원 형태이지만
내용을 보면 ‘이걸 원하니 이것 좀 하시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하게 청하는 투로 기도하지만
사실은 내 말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화를 내고, 원망하고, 어떤 때는
내 기도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
믿지 않을 거라고 삐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도는 종종 내 기도 안 들어주면
당신 안 믿을 거라는 협박성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 중에는,
특히 신학을 공부했다는 신자들 중에는
나는 이런 기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달라는 기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태도가 올바른 것으로 읽히지 않고
그런 말투에서 저는 대단한 교만을 느낍니다.
감사와 찬미와 흠숭은 드리지 않고 달라고만 하는 것이
염치없고 얌체 같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본래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요?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얌체입니다.
일생 그리고 다 주시고 이제 뼈만 남은 늙은 부모의
등골까지 빼먹는 염치없고 얌체인 것이 우리 자식들이듯
우리는 하느님 사랑 앞에서 영원한 얌체입니다.
저는 이런 우리를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 교만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상 사랑의 하느님은
달라는 기도 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말이
몹시 서운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주고 싶으신데 우리는 달라지 않겠다니
사랑이신 하느님의
존재 이유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괘씸하고 못된 것은
받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고 한 순간인들 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받아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안 받았다고 시치미 떼는 것이고,
나는 달라지 않을 테니
당신이 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으면
알아서 주슈 하는 것입니다.
오늘 집회서는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의 겸손한 청원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서부터 끝까지 달라는 것이지만
“이 세상 만민이 당신께서 영원하신
주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하고
깨달음을 달라는
청원기도도 할 줄 아는 겸손한 기도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