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Your faith has saved you.".
(Mk.10,52)
제1독서 집회서 42,15-25
복음 마르코 10,46ㄴ-52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몽고의 칭기즈칸입니다. 그는 이러한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칭기즈칸은 어떤 순간에도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를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논리만이 우리를 행복과 성공으로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보다는 ‘~때문에’라는 논리를 더 선호합니다. 즉, 다른 것에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우리는 너무 많이 즐깁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고통의 순간에서 과연 어떤 논리를 펼치고 있는 지를 유심히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순간 내 자신을 불행으로 유도할 것입니다. 반대로 어렵고 힘든 고통의 순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행복과 성공이 내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의 몇 가지 예를 적어 봅니다.
-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행복을 선택하겠다.
- 남이 거짓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행복을 선택하겠다.
- 남이 나를 비방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행복을 선택하겠다.
- 남이 나를 배신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행복을 선택하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 역시 ‘~ 때문에’ 보다는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음을 발견힙니다. 그는 예수님 소식을 듣고서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었지요. 그리고 예수님만 있다면 자신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자기 앞을 지나신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말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쳐 외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들은 참 많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 자신을 데리고 갈 사람이 없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과 예수님의 간격을 허용하지 않는 군중 역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님께 구원을 청했고, 그 결과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을 얻게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르티매오가 들었던 이 말을 우리 역시 듣고자 한다면,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짐을 가슴 속 깊이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만이 나를 구원할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어루만지면서 변합니다. 어루만져서 경직되고 냉혹했던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안젤름 그륀).
기름진 땅은 받지 마라(‘좋은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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