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 4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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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3-04 | 조회수1,259 | 추천수24 | 반대(0) 신고 |
3월 4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 마르코11,11-25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넘어진 사람들 일으켜 세우는 방법 두 가지>
돈보스코는 꿈의 성인(聖人)으로 불릴 만큼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꿈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곤 했습니다.
그는 100년도 훨씬 전에 자신의 아들들이(살레시오 회원들) 이탈리아 반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활동하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이런 그의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변 사람들은 돈보스코를 향해 ‘약간 맛이 간 사람’ ‘지나친 몽상가’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의 꿈은 120% 실현되었습니다. 지금 살레시오회는 130여 개국에 진출해서 돈보스코가 못 다 이룬 꿈을 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한번은 두 명의 살레시오 회원이 금으로 된 큰 성잔을 들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 안에는 피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황하가 흐르는 중국이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꾸었던 그 꿈은 50여년 뒤에 정확하게 이루어졌는데, 1930년 당시 중국에서 활발히 사목활동 중이던 베르실리아 주교, 카라바리오 신부, 두 살레시안이 사목방문 중에 악한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었습니다. 두 분은 몇 년 전 시성되셨습니다.
‘무서운’ 꿈의 성인 돈 보스코께서 한번은 작은 언덕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시선은 어느 집 옥상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에 한 귀부인이 서 계셨는데, 자세히 보니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 주변에는 몇몇 아이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성모님께서는 아이들에게 흰 손수건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손수건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금실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Regina Virtutum(라틴어, ‘덕의 여왕’이란 의미)
성모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손수건을 나누어주시면서 한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애들아, 바람이 불 때 절대로 손수건을 펴지 말거라!”
성모님의 당부말씀에 아이들은 손수건이 바람에 휘날리지 않도록 호주머니에 넣거나 꼭꼭 숨겼습니다.
그러나 어디가나 꼭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지요. 그렇게 당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못 이겨 손수건을 꺼내 펼쳐들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순간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진눈깨비까지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박, 천둥, 번개까지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펼치고 있던 손수건은 심하게 찢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기도 하고, 큰 구멍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 대해 돈보스코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 이 장면은 무엇을 암시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성모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들아, 흰 손수건은 하느님께서 인간 각자에게 선물로 주신 순결의 덕을 의미한단다. 바람은 유혹을 의미하는데, 바람이 불 때 손수건을 펼친 아이들은 유혹에 넘어가 깨끗함을 상실한 아이들이란다. 한번 유혹에 넘어가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진눈깨비, 우박, 천둥, 번개가 몰아쳐 죄 속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이란다.”
손수건이 찢어진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돈보스코는 성모님께 또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님, 한번 쓰러진 저 아이들은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걸로 영영 끝입니까?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 순간 성모님께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들아,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죄로 인해 잃어버린 순결의 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지면 금상첨화이란다. 그 두 가지 처방약은 다름 아닌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기도하시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셨는데, 마침 성전입구에는 갖은 장사치들이 득실거렸습니다. 뭔가를 사고팔기도 했고, 흥정하기도 했습니다. 다투기도 했고 욕설도 오고 갔습니다.
그러한 모습에 예수님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불의 앞에, 타락 앞에 분노하신 예수님은 ‘강도들의 소굴’이 된 성전 마당을 완전히 뒤집어엎으십니다. 성전 정화 작업을 실시하신 것입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가르침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어찌 보면 우리들의 몸 역시 성전입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입니다. 주님의 몸인 성체가 거하시는 생명의 성전입니다. 늘 깨끗해야 할, 늘 거룩해야 할, 늘 잘 보존되어야 할 성전이 바로 우리 인간 각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시피 주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 수시로 훼손됩니다. 끊임없이 속화됩니다.
심각하게 파괴되고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치하다가는 언젠가 주님께서 크게 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크게 치시기 전에 서둘러 성전 정화 작업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능동적, 자발적 정화작업이 필요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정화가 가능합니까?
성모님께서 돈보스코 성인의 꿈에 가르쳐주신 두 가지 방법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잘 준비된 잦은 고백성사와 정성을 다한 영성체가 해결책입니다.
이 두 가지 성사로 인해 우리의 양 어깨 위에는 다시 한 번 순결의 날개가 달릴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영혼은 자비하신 하느님께로 한층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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