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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06 조회수698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6일 연중 제9주일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Did we not drive out demons in your name?
Did we not do mighty deeds in your name?’
Then I will declare to them solemnly,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evildoers.’
(Mt.7.21)
 
제1독서 신명기 11,18.26-28.32
제2독서 로마서 3,21-25ㄴ.28
복음 마태오 7,21-27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신학교 선배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서울 대신학교에 신학생 선후배로 만난 후 처음으로 보았기에 정말로 오랜만이었지요. 그래서 더욱 더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신부님의 손을 잡으면서 “형님, 정말로 반가워요.”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는 저를 처음 본 듯이 “네. 신부님 저도 반갑습니다.”라면서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도 반가워서 다가갔는데, 그 신부님께서는 저를 잊어버리셨나 봅니다.

하긴 저는 그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는 아시는 분 자제분이 결혼을 하신다고 해서 예식장에 다녀왔는데, 예식장에 오신 많은 교우들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 저 누구에요. 아시죠?”하면서 물어보는데, 저는 그분에 대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분 역시 상당히 서운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나는 기억되어져야 하고, 남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었음을 반성합니다. 하긴 어제 낮에 제 휴대전화 속에 기록된 전화번호를 정리를 하는데, 모르는 이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장할 때에는 분명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반성하게 됩니다. 얼마나 관심을 갖고 만남을 가졌었는지, 그리고 단 일회적인 만남으로만 그치는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주님, 주님!”을 외치고 있지만, 얼마나 주님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일상의 삶에서 했을까요? 무조건 나만 주님으로부터 기억되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 점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리고 모세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포하지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들을 너희가 듣고 따르면 복이 내릴 것이다.”

주님의 복을 받고자 한다면, 주님의 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주님! 주님!’만을 외치며 청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려고 노력하는 자를 끝까지 기억하시고 지켜주십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더 큰 아픔을 겪는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덜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라(슈바이처).




생각하기 나름(‘좋은생각’ 중에서)

절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쌀가마를 훔쳐 지게에 졌는데, 너무 무거워 일어서지 못하고 쩔쩔맸다. 그때 누군가 지게를 밀어 주었다. 깜짝 놀란 도둑이 뒤돌아 보자 한 스님이 손을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

“쉿! 들키겠네.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내려가게. 먹을 것이 떨어지면 또 오게나.”

혜월 스님이었다. 경허의 제자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은 혜월은 배고픈 대중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는 곳마다 산비탈을 개간해 논을 만들었다.

어느 날, 혜월이 개간한 논을 탐내던 사람들은 그 논을 팔라고 요구했다. 혜월은 사람들의 거듭된 간청에 못 이겨 헐값에 논을 팔았다. 논을 팔고 받은 돈으로 일꾼을 고용해 다시 산자락에 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꾼들이 꾀를 내어 날마다 혜월에게 좋은 법문을 들려 달라고 졸랐다. 법문을 듣는 동안 쉴 요량이었다. 그 청을 들어주다 보니 하루해가 다 가도록 아무 일도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혜월은 그 논을 들여다보며 매우 흡족해했다.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던 한 제자가 물었다.

“스님, 뼈 빠지게 일해서 만든 논을 헐값에 팔고 그 돈으로 일꾼을 구하고도 논 몇 마지기밖에 완성하지 못해 손해가 큰데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혜월이 말했다.

“이 녀석아, 무슨 셈이 그 모양이냐? 판 논은 그 자리에 있지, 그 돈은 일꾼들이 품삯으로 받아 생활에 도움이 되었지, 그리고 산자락에 없던 논 몇 마지기가 새로 생겼으니 이거야말로 큰 이득을 본 것 아니냐?”
 
 
 
Lex Yeux F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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