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우리 수도원에서는 해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실천하는 아름다운 전통 하나가 있다. 재의 수요일 전날 형제들은 사순 시기 동안 자신이 희생하고 극기할 내용을 적어 아빠스님에게 제출하면 아빠스님은 허락과 동의를 해 주신다. 성 베네딕도는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 말한다.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지닌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이 바치고자 하는 것을 자기 아빠스에게 알려서 그의 기도와 동의를 얻어 실행할 것이다. 모든 것은 아빠스의 동의를 얻고 행해져야 한다” (수도규칙 49장). 이처럼 영적 지도자의 허락 아래, 어떤 형제는 하루 가운데 한 끼 식사를 않으며 희생하고 어떤 형제는 특별한 개인 기도를 더 많이 하거나 영성 서적을 더 많이 읽는다. 독자들도 집에서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엄마나 아빠의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신앙 교육과 인성 교육에 좋을 듯 하다고 잠시 생각해본다. 그런데 우리가 사순 시기 동안 하는 다양한 절제와 희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의 가치는 하느님의 뜻에 멀어졌던 우리가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참다운 회개와 참회를 드러내는 도구이고 표지라는 데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이지만, 회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긴 과정이 필요하다. 어쩌면 세례 때부터 시작하여 우리 온 생애 동안 하는 거룩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순 시기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예비신자들에게는 파스카 밤에 받게 될 입문 성사 (세례, 견진, 성체)를 준비하고, 큰 죄를 지은 신자들에게는 공적 참회의 과정을 밟는 시기였다. 파스카 성야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 안에서, 예비신자들은 입문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딸이 되고, 참회자들은 죄 사함을 받아 지금까지 목말라했던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주님과 교회에 다시 결합된다. 입문 성사의 준비와 참회의 여정은 당사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는 여정이었다. 이러한 전통의 선상에서 ‘전례주년과 전례력 총지침’ (27항)은, “사순 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하여 설정되었다. 사순절의 전례로써 예비신자들은 입교 절차의 여러 단계를 통해, 그리고 신자들은 이미 받은 세례를 다시 기억하고 참회 행위를 통해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한다” (전례헌장 109항 참조)고 말한다. 그래서 사순 시기는 교회 공동체가 다같이 하느님께 걸어 나가는 기간이다. 교회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사순 시기 주일 성찬례의 말씀전례 가운데 성경 독서 (구약, 서간, 복음)에서 하느님과 일치되는 영적 여정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는 것인가를 들려준다. 사실 우리는 말씀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신앙으로 경청함으로써 오늘도 그분이 하시는 새로운 계약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동시에 새 계약에 늘 충실한 백성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우리는 같은 신앙으로 이 말씀에 응답한다. 사순 시기는 모두 여섯 주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미사의 말씀 전례를 통하여 주일마다 주님의 파스카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 주일 독서의 배열은 크게 보면 3년 주기 (가해, 나해, 다해)로 마련되었고, 각 해에는 그 해에 해당하는 고유한 주제에 따라 다양한 성경 독서들로 배열되어 있다. 그런데 사순 시기 첫째와 둘째 주일에는 주님께서 유혹받으시는 이야기와 거룩한 변모 기사에 관한 복음을 세 공관 복음의 구성을 따라 듣고, ‘주님 수난과 성지주일’인 제6주일에는 세 공관 복음에서 행렬을 위하여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대목과 미사에서는 주님 수난사화를 경청한다. 그래서 이 세 주일의 독서들은 주제에서 볼 때 가, 나, 다해 모두 같다. 여기서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우리는 사순 제3주일, 제4주일, 제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봐야 한다. 가해의 주제는 입교 성사 특히 세례의 여정으로, 나해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파스카 여정으로, 그리고 다해에는 참회의 여정으로 되어있다. 이 세 가지 주제들은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모두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파스카 사건을 준비하는 여정이다. 이것을 알아보기 쉽게 각 해의 독서들을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표는 성서와 함께 3월호를 참조) 가해: 세례의 여정 우리는 가해의 독서에서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위한 교리 교육의 절정을 만날 수 있다. 세례의 “물-성령”을 통해 (제3주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신앙”에 다다르게 되고 (제4주일)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선사받는다 (제5주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느님의 모든 구원 계획은 살아있는 인간 안에서 실현된다. 나해: 파스카 여정 나해에서는 몇 가지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듣는다. 곧, 파괴되고 재건되는 “성전”, 사막에서 모세의 손으로 올려지는 구리 “뱀”, 죽은 후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그것이다. 이 상징들로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와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의 파스카가 드러난다. 다해: 참회의 여정 다해의 독서를 들으면서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탕자의 회개”,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회개-화해에 관해 가르치는 루가와 요한복음의 말씀이 참회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파스카적 문맥에서 이 복음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느님과 우리가 맺는 화해와 친교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에서 성취된다. 이처럼 사순 시기 주일 말씀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이 말씀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모두 순례의 여정을 걷는 사람임을 다시 깨닫는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 이 영적 순례의 발걸음이 파스카 밤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희생과 극기의 은혜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마태 4,4) 양육되는 사람은 육신을 깨끗이 하고 파스카 밤에 성령과 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모된다. [성서와함께, 2004년 3월호, 인 끌레멘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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