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사순절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례주년’(典禮週年)에 따라 한 해를 지낸다. 이것은 교회가 한 해의 달력에 따라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연중 시기, 그리고 이 시기 가운데 작은 파스카인 주님의 날 (主日)을 시작으로 하여 한 주간을 주일과 평일로 나누어서 주님의 구원 신비를 다양한 주제로 거행하고 되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말한다. “일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 즉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강림 날, 그리고 복된 희망과 주의 재림의 기대까지를 전개한다” (전례헌장 5항). 이렇게 교회가 여러 구원 신비를 경축하기 위하여 한해를 나누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 삶은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끊임없이 경축하는 삶이고 이 신비를 중단 없이 더 깊게 되새김질하는 삶이다. 더 나아가 전례주년을 지내면서 우리의 삶은 궁극적인 목적인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전례주년 가운데 사순절(사순시기)은 전례주년의 중심이며 절정인 파스카 사건,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40일 기간을 가리킨다. 사순절은 라틴말로 Quadragesima라 하는데, 이 말은 ‘40일’이란 말에서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났으며,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며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서 기도와 단식을 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이기시면서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이처럼 성경에서 40이란 상징적 숫자는 궁극적인 구원을 준비하는 기간을 뜻한다. 이러한 성서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교회에서도 전례주년 가운데 가장 큰 축제인 파스카를 준비하는 기간을 40일로 정했다. 이 시기 동안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면서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길을 따르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다. 사순절은 머리에 재를 받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모두 여섯 주간으로 구성된다. 단,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순절의 주일은 사순시기에서 제외된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지 주일부터 시작하는 성주간이다 (개신교에서는 고난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순절은 계산상으로 보면 부활 전 날인 성토요일에 끝난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단일한 사건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 죽음을 앞두고 거행하신 최후만찬과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금요일과 무덤에 계신 성토요일과 부활하신 부활 주일을 모두 합하여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순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목요일 오전으로 끝난다. 사순절의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주님의 파스카 신비(수난과 죽음과 부활)를 내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신자들이 단식과 고행과 절제를 하는 은총의 기간이다. 이 단식의 전통은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 이집트 교회에서 시작되어 점차적으로 모든 교회로 퍼졌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과 주님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두 번 공식적으로 단식을 하고 금요일마다 금육을 한다. 또한 주님이 돌아가신 금요일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서 걸으셨던 고통을 체험한다. 그리스도교가 자유를 얻고 예비신자 교육이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된 4세기 이래 사순시기는 세례와 견진과 성체 성사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지 않은 예비 신자들이 이 성사들을 받기 위해 집중적으로 교육받고 준비하는 특별한 시기이다. 이들은 위대한 파스카 밤에 입문성사를 받는다. 오늘날에도 예비신자들은 부활 밤에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견진성사는 추후에 받는다). 또한 이 시기는 참회 기간을 채운 죄인들이 교회와 화해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사실 초 세기에는 큰 죄를 지은 죄인들은 쉽게 교회로 들어올 수 없었고 적어도 3년 이상의 속죄 기간을 보내야 했다. 로마 교회에서는 성목요일에 오전에 참회자의 화해 예식이 거행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전통은 사라지고 고해성사로 대체되었다. 단식과 절제와 참회와 나눔을 통하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 축제인 파스카를 준비하는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다고 그랬다. ‘재의 수요일’이란 말은 이 날 신자들은 머리에 재를 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재의 수요일 예식은 성대하게 거행된다. 이 예식은 통상적으로 미사 안에서 이루어진다. 미사는 크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말씀 전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 전례로 구성된다. 이날 말씀 전례에서 성경 독서 3개를 듣는데 구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은 사순절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선 모든 이가 참회를 하라는 요엘 예언자의 호소 (요엘 2,12-18)를 듣는다.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권고 (2코린 5,20-6,2)에 귀를 기울인다. 끝으로, 제자들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마태 6,1-6.16-18)을 경청한다. 그러고는 사제는 강론(설교)으로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고 이어지는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렇게 신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 앞에 우리가 범한 죄를 더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보다는 하느님의 옛 백성이 지녔던 완고한 마음을 더 닮았으며 또 닮고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말씀 전례가 끝나고 사제는 다음의 기도문으로 재를 축복한다. “하느님, 겸손한 사람을 어여삐 보시고 속죄하는 사람을 용서하시니,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고, 이 재를 머리에 받으려는 주님의 종들에게 (십자가를 그으면서) 강복하소서. 저희가 주님의 은총으로 사순시기의 재계를 충실히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성자의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게 하소서.” 그러고는 사제는 말없이 재에 성수(聖水)를 뿌린다. 다음에 사제는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또는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 3,19 참조)고 말한다. 이 예식에서 사용하는 재는 그 전 해 성지주일(聖枝主日)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때 나귀를 타고 도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사용한 나뭇가지를 태운 것이다. 신자들은 이 나뭇가지를 집으로 가져가 가정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걸어 재의 수요일 전까지 보관한다. 그런데 재는 어떤 뜻으로 재의 수요일 전례에서 사용되는가. 사람의 마음은 눈에 안 보인다.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선물에 담아 다른 이에게 표현하듯이, 전례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물질적인 표지를 통해 하느님께 드러낸다. 이것을 전례의 육체성(肉體性)이라고 부른다. 이 표지가 담고 있는 속뜻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경에서 재, 티끌, 흙은 다 같은 말이다. 재는 우선 우리 인간의 나약성과 우리의 죽을 운명을 상징한다 (창세 2,7; 18,27; 집회 17,32; 전도 3,20; 시편 103,29). 성서 여러 곳에서 확인되듯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께 우리 존재는 재와 같이 미미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나약성을 표현하는 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재계와 회개를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악 때문에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파스카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이 악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희망이 구체화되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참회하는 사람이 자신의 내적인 자세를 밖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동작이다 (욥 42,6; 요나 3,5-6). 또한 재는 구원을 간청 드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애원하는 기도의 표현이다 (유딧 4,11; 9,1). 그러나 재를 얹는 것이 순전히 죽음과 우리의 타락과 죄를 기억하고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일으켜지는 부활의 표지이다. 우리는 생명으로 불림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티끌에서 온 우리는 다시 티끌로 돌아갈 것이지만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흙으로 지은 아담이 하느님의 입김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창세 2,7), 부활 밤 세례성사의 물을 통하여 우리의 진흙도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의 힘을 통해 파스카로 이루어진 생명에 참여할 것이다 (로마 8,11). 그래서 재를 머리에 얹는 행위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건너가는 새로운 해방에 대한 교육적이고 효과적인 표지가 된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앙의 원천을 성경과 성전(聖傳)으로 보고 있다. 개신교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천주교에서도 특히 성경은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 자체로, 사순절 전례(典禮)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순시기 동안 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경청하면서 구원 역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구원 사건들이 교회 안에서 실제로 계속되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사실 사순절은 교회가 한 공동체로서 하느님께 걸어가는 은총의 기간이다. 사순시기에 오는 주일은 사순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간 파스카인 사순절 주일 미사 말씀 전례에서 교회는 성경 독서들 (구약, 신약 서간, 복음서)과 강론(설교)을 통하여 사순절 동안 걸어가는 영적 여정이 무엇인지를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들려준다. 가톨릭 교회에서 주일에 듣는 성경 독서는 3년 주기 (가해, 나해, 다해)로 마련되어 있다. 3년 주기 독서 배열이란 기원 후 1년부터 차례로 3배수로 계산하여, 기원 후 1년은 가해, 2년은 나해, 3년은 다해에 해당하고, 6년, 9년, 12년은 다시 다해가 되는 배열을 말한다. 그래서 올해는 나해가 된다. 모두 여섯 주간으로 되어 있는 사순시기 가운데 사순 제1주일, 제2주일, 제6주일 각 해의 성경 독서는 주제에서 볼 때 모두 같다. 사순 첫째와 둘째 주일에는 주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에게서 유혹받으시는 이야기와 거룩한 변모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세 공관 복음서의 차례(가해-마태오, 나해-마르코, 다해-루가)에 따라 듣는다. 그리고 성지주일인 사순 제6주일에는 나뭇가지를 들고 행렬을 할 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예를 들어, 나해에는 마르 11,1-10), 미사 말씀 전례에서는 주님 수난 기사를 그 해에 해당하는 공관 복음서에 따라 듣는다 (나해에는 마르 14.1-15,47). 그래서 사순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주일, 제4주일, 제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가해는 입문성사, 특히 세례를 위한 교리 교육에 적합한 여정으로, 나해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을 선언하고, 그리고 다해에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각 해의 주제를 보기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해: 세례의 여정 가해의 독서에서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위한 교리 교육의 절정을 만날 수 있다. 세례의 “물-성령”을 통해 (제3주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신앙”에 다다르게 되고 (제4주일)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받는다 (제5주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느님의 모든 구원 계획은 살아있는 인간 안에서 실현된다. 나해: 파스카 여정 나해에서는 몇 가지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요한복음의 말씀을 듣는다. 파괴되고 재건되는 “성전”, 사막에서 모세의 손으로 올려지는 구리 “뱀”, 죽은 후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상징한다. 이 상징 안에서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와 이것에 참여하는 우리의 파스카가 하나가 된다. 다해: 참회의 여정 다해의 독서를 들으면서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탕자의 회개”,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회개-화해에 관해 가르치는 루가와 요한복음의 말씀이 참회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느님과 우리가 맺는 화해와 친교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에서 성취된다. 사순절 주일 말씀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이 말씀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모두 순례의 여정을 걷는 사람임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약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아프게 되새긴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라는 조건에 대해 안다는 것이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낙담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과는 반대로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는 자비로우신 주님의 사랑에 우리의 신뢰는 더욱 새롭게 된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 이 영적 순례의 발걸음이 파스카 밤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희생과 극기의 은혜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마태 4,4) 양육되는 사람은 육신을 깨끗이 하고 파스카 밤에 성령과 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모된다. [개신교 '들소리신문', 인 끌레멘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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