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의 예배] 감사기도를 낭송하는 주례사제의 책무 주례사제는 성찬례 거행의 총감독으로서 예식 진행 전반에 대한 최종 책임자이며, 예식 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부분을 선택하고 합당한 말로 권고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부분에는 간략한 문장으로 회중을 이끈다. 주례사제가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부분으로는 경우에 따라 성가, 독서, 기도, 동작들이 있을 수 있고, 합당한 말로 권고할 수 있는 부분으로는 시작예식의 인사 직후에 그날 전례에 대하여 신자들에게 간략히 소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31항, 이하 항목 번호만 표기함). 그러나 주례사제는, 여러 개 중에서 선택하거나 다른 합당한 말로 이끌 수 있도록 규정된 부분 외에는 “미사 거행에서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못한다”(24항).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 중 하나이며 성찬례의 핵심 기도문으로서(30항) ‘규범적인’ 성격이 강한 감사기도를 낭송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 중 하나인 감사기도 주님께서는 최후만찬 때에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1코린 12,25)라고 하셨으며, 교회는 처음부터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주님께서 거행하셨던 최후만찬을 성사적으로 재현하였고, 그 안에 파스카 신비로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온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 구원을 체험하여 왔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도록 명하신 ‘이 예식’이 구체적으로 무엇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 교회는 빵/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시고’, ‘쪼개어’, ‘나누어주신’ 것이라고 이해하였으며, 그에 따라 교회가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찬례를 거행할 때에는 늘 ‘주례사제’가 최후만찬 상의 ‘주님’의 모범을 따라 빵/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고 쪼개어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니, 이 네 가지를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찬례가 되게 하는 요소’ 곧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라고 한다. 이 네 가지 제정적 요소는 성찬전례의 여러 부분에 각각 배정되어 있으니, 주님께서 빵/잔을 ‘드신’ 것은 사제가 제병과 포도주를 ‘들고’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치는 것이며, ‘감사를 드리신’ 것은 사제가 바치는 ‘감사기도’이고, 빵을 ‘쪼개신’ 것은 영성체 직전 사제가 성체를 ‘쪼개어’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며, ‘나누어주신’ 것은 영성체 때에 사제가 성체를 신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감사기도는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 가운데 주님께서 빵/잔을 드시어 성부께 감사를 드리신 것에 해당한다. 간혹 감사기도 중 성찬제정문의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 “쪼개어”라고 하면서 실제로 제병을 쪼개는 사제가 있는데, 이는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를 혼동하는 것이다. (빵을 들고서) 감사를 드리는 것과 빵을 쪼개는 것, 둘 다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나, 감사기도를 바치는 것은 감사를 드리는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지 빵을 쪼개는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정적 요소로서 중요한 동작이라 할 수 있는 빵을 쪼개는 동작은 따로 영성체 직전에 위치한다. ‘쪼개어’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 이 문장은 감사기도에 포함되어 있는 ‘성찬제정문’으로서, 말 그대로 성찬례의 네 가지 제정적 요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그 문장 하나에 제정적 요소들이 예식적으로나 성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제정문을 낭송할 때에 다른 제정적 동작들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에 이미 언급하였듯이 성체를 쪼개는 동작은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로서 주례사제가 해야 할 고유한 행위이다. 이따금 쪼개야 할 성체가 많아서 부제나 공동집전사제가 도와줄 수는 있으나(83항), 합당한 이유 없이 주례사제가 다른 이에게 이 ‘쪼개는’ 일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규범적 성격이 특별히 강한 감사기도 이미 6세기 이후로 교회는 감사기도를 지칭할 때 ‘카노니카(canonica)’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교회가 감사기도를 규범성이 강한 매우 중요한 기도로 이해하였으며,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았음을 시사한다. 현행 전례 규정에도 사제가 감사기도를 고치거나 임의로 작성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구원의 성사”, 51항). 그러나 감사기도의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전구 부분에서 사제가 그날 미사지향과 관련하여, 교회로부터 인준받은 문장을 고치거나, 없는 문장을 새로 끼워 넣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보게 된다. 감사기도 제1양식에는 산 이와 죽은 이의 이름을 모두 언급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제2양식과 제3양식에는 죽은 이의 이름만을 언급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제4양식에는 따로 이름을 언급하는 곳이 없다(365항). 그러므로 감사기도 제2양식을 바치면서 산 이의 이름을 끼워 넣으려고 기도문을 변경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 감사기도의 전구 부분이 드러내는 근본정신은 온 세상에 퍼져있는 교회 공동체의 ‘일치’이다(79항). 미사지향으로 올라온 이름을 감사기도 자체를 고치면서까지 어떻게든 언급하려는 모습은, 자칫 미사를 어떤 한 개인을 위한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정작 감사기도의 전구 부분이 지향하는 온 교회의 일치라는 근본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다. 또한 미사지향 때문에 그날 미사에 더 적합하다고 보이는 감사기도 대신에 다른 양식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미사지향을 언급하기에는 시작예식의 인사 직후에 전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순간이 적합하지만, 이때에도 미사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온 교회의 일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감사기도의 합당한 낭독과 동작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로서 규범적 성격을 띠는 감사기도는, 성찬례의 기도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심오한 교의를 담고 있으므로, 신자들에게는 그 자체로 가장 큰 전례적 교리교육이 된다(전례헌장, 35항 참조). 그러므로 사제는 감사기도를 바칠 때에 적절한 빠르기의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낭송해야 하며(32항) 정중하고 합당한 동작으로 낭송하는 모습을 신자들에게 보여야 한다(“신학교의 전례 교육에 관한 훈령”, 58항 참조). * 신호철 비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교수·신부. 전례학 박사. [경향잡지, 2010년 9월호, 신호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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