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돋보기] 거룩한 주일과 참된 쉼
성경을 통해 본 안식일의 의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일요일을 주일, 곧 ‘주님의 날’을 거룩한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주님이요 메시아로 고백하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신 사실을 경축하면서 모든 날들 가운데 으뜸으로 삼은 날입니다. 그런데 주일이 이런 특별한 날로 정해지기 전에는 이날이 다른 날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특별한 날이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가리킬 때는 ‘안식일’과 관련시켜 언급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교회는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에서 이러한 주일을 거룩히 준수할 것을 신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3계명은, 십계명 자체가 구약의 십계명(탈출 20,1-17; 신명 5,6-21)에 그 기원을 두고 있듯이, 구약의 안식일 준수 규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언어적 의미 우리가 안식일로 번역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샵밭(탈출 16,25; 20,10; 레위 23,3; 신명 5,14 등) 또는 욤 핫샵밭(탈출 20,8. 11; 31,15; 신명 5,12. 15; 예레 17,21 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칠십인역은 이 말을 삽바톤이라는 그리스어로 옮깁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도 그대로 사용됩니다(마태 28,1; 요한 19,31 등 참조). 샵밭이라는 히브리말은 샤밭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샤뱥이라는 동사는 ‘멈추다, 중지하다, 그만두다, 그치다.’라는 뜻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출발하여 ‘일하던 것을 그치고 쉬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창세 2,2. 3; 8,22; 레위 26,34. 35; 여호 5,12; 이사 14,4; 잠언 22,10 등 참조). 더 나아가, 안식일과 연관해서 ‘안식일을 지키다.’라는 뜻도 갖게 됩니다(레위 23,32; 2역대 36,21 등 참조). 이렇게 볼 때, ‘멈추다, 중지하다, 그만두다, 그치다.’라는 의미의 샤뱥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샵밭(또는 욤 핫샵밭)의 우리말 번역인 안식일은 ‘중지, 멈춤, 휴식, 안식’을 의미합니다. 안식일 준수의 기원 안식일이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에서 음식으로 받게 된 만나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합니다(탈출 16,22-30 참조). 탈출기 이에도 나머지 세 권의 책들, 곧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모두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 규정이 광야에서부터 준수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안식일 규정이 적어도 바빌론 유배 이전부터 있던 관습이란 사실은, 유배 이전의 성경 본문들을 통해 확실해집니다. 예를 들어, 아모스 예언서에는 다음과 같이 안식일이 언급됩니다. “너희는 말한다.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 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에파는 작게, 세켈은 크게 하고 가짜 저울로 속이자’”(아모 8,5). 또 이사야 예언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됩니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이사 1,13). 이 밖에도 호세 2,11-15, 2열왕 4,23-25 등, 바빌론 유배 이전 시기로 분류되는 본문들에 안식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을 규정이 유배 이전부터 준수되고 있었음이 분명해집니다. 안식일의 의미 (1) 창조의 완성으로서의 안식 우리가 알고 있는 안식일의 의미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창세 2,1)을 창조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고 전하는 창세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탈출기 20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8-11). 첫 번째 십계명에서는(탈출 20,8-11) 안식일을 창세기의 창조신학과 연결시키면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창조의 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휴식 또는 안식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신 완전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안식인 동시에 장차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누리게 될 “참 안식”(히브 4,9; 10,19; 12,22-23; 묵시 14,13도 참조)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구원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는 자유로서의 안식 신명기 5장을 보면, 안식일의 의미가 탈출기 20장에서 말하는 그것과 차이를 보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 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2-15). 신명기 5장은, 두 번째 십계명의 문맥 안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근거를 이집트 탈출에 두고 있습니다. 동시에 안식일의 목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안식일을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곧, 안식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외국인들, 그리고 심지어 가축까지도 휴식을 취하게 하려는 것이 안식일 준수 안에 내포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탈출 23,12도 참조). 두 번째 십계명에서는(신명 5,12-15) 안식일의 준수를 구원신학과 연결시키면서 이집트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는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은, 또한 사회적 의무도 내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명기 5장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구원적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근거로 삼으면서 안식일 준수를 이 구원적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삶의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구원적 사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주일의준수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적 사건과 연결시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에서 해방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는 자유로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3) 계약의 징표로서의 안식일 준수 탈출기 31장은 안식일의 또 다른 의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대대로 안식일을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 이 안식일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다’”(탈출 31,13. 16-17). 안식일 준수가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계약의 징표이며 구원의 보증이라는 생각은 후기 성경들에서도 나타납니다(에제 20,12-24; 예레 17,21-27; 이사 56,4-7; 58,13-14; 느헤 13,15-22 등 참조). 안식일과 주일 초대교회도 처음에는 안식일을 지키면서 유다교 회당에 모였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 부활 이후 안식일에 유다교 회당을 찾아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얘기를 찾아볼 수 있습낟(사도 13,14; 18,4 등 참조). 그런데 예를 들어 사도행전은 “주간 첫 날에 우리는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다. 바오로가 신자들에게 이야기하였는데, 이튿날 떠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자정까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사도 20,7)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구절은 오늘날 우리와 같이 일요일에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모였음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 다음날, 곧 오늘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기원에 대해서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를 이뤘던 그리스도교 최초 시기에는 안식일을 지켜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바오로 사도의 전도 이후, 비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안식일 규정의 의미가 크게 축소되었고, 또한 ‘주님의 부활’의 의미가 크게 부각되면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 날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둘째,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에 회당 전례에 참례했을 때 처음에는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던 유다교인들이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그 신자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에게 주목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믿는 바와 이들이 믿는 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정통 유다교인들이 아님을 알고 회당 전례에 참석치 못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외에 다른 이유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떠나 ‘주님 부활의 날’을 으뜸가는 예배일로 정하게 된 기원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안식이 다음 날을 으뜸 예배일로 정해서 지켜 왔는가? 이것은 아무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사도 20,7을 참고해 보면 어느 정도는 그 연대를 추정해 보는데 도움이 됩니다. 사도 20,16을 보면 바오로는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를 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아시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에페소를 그냥 지나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사실 그는 되도록 오순절에는 예루살렘에 있으려고 서둘렀다”(사도 20,16). 이 구절에 언급되는 오순절은 서기 58년의 오순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의 일요일에 해당하는 주간 첫 날, 곧 주일에 서로 모여 주님의 만찬을 나누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은 늦어도 58년 이전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즈음에 그리스도교 안에서 안식일과 완전히 결별을 했는지 아니면 안식일과 주일 모두를 특별한 예배일로 지내왔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후자의 경우가 더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2세기에 와서야 완전히 안식일과 결별을 고하고 주간 첫 날, 곧 주일만을 특별한 예배일로 지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곧 안식일과 결별하고 안식일 다음 날인 주간 첫 날을 으뜸가는 기념일로 제정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신앙의 근본인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체험’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후 이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다시 말해서 ‘주님의 날’(묵시 1,10)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내포하는 주일은 안식일이 갖는 사회적, 인간적, 종교적 이유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부활’과 이를 통한 ‘구원과 해방’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의미를 더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경 본문들, 특별히 구약성경 안의 본문들을 통해서 안식일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안식일 규정과 관련해서 성경은 세 가지의 대표적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완전한 세상 창조의 안성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에덴에서의 평화로운 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이 안식은 장차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누리게 될 “참 안식”(히브 4,9)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이집트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이 가져단 준 자유라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의 구원적 죽음을 통해 죄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누리는 자유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안식일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계약의 징표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이는 구원에 대한 약속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룩한 날로 지내는 주일은, 이상에서 살펴본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왔고 또 현재에도 유다교 안에서 준수되고 있는 안식일 규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주일은 성경이 전하는 안식일의 신학적 의미들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창세 1,31) 완전한 세상을 창조해 주신 사건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을 되새기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새 계약(요한 13,34)을 떠올리면서 지내야 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신학적 의미들을 되새기는 가운데, 세상 창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평화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으로써 되찾아 주신 자유를 구가하면서, 종말론적 구원을 약속하는 징표로서의 주일을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일을 보내게 될 때 우리는 이 특별한 날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시편 126,3; 이사 9,2; 55,12; 65,18; 요한 15,11; 17,13; 20,20; 사도 2,46; 11,23; 13,52 등 참조). * 정장표 레오 - 작은형제회 수사. 성서학박사이며, 수도자신학원 원장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정장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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