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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7: 방사, 축복, 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29 조회수5,021 추천수0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7) 방사(放辭) · 축복(祝福) · 축성(祝聖)


하느님 구원에 대한 감사 · 찬양의 기억

 

 

미사 후에 성물방 앞을 지나게 되면 교우들이 성물들을 하나씩 손에 들고 사제를 기다리고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은 ‘방사 해주세요’, 약간 젊은 자매님은 ‘축성 해주세요’, 또 다른 분은 ‘축복 해주세요’ 등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서 똑같은 의미의 것을 요청한다. 이 용어들은 틀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제대로 의미를 알고 용어들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 교우들의 전례와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들 중에 「회장직분」이라는 책이 있다. 책에 보면 ‘방사’(放辭)라는 말이 나오는 데 글자의 뜻은 ‘말씀을 놓다’는 뜻이다. 사제가 ‘성물에 축복하는 말씀을 놓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그 뜻은 ‘성물을 축복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약 100년 이전의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물을 갖고 기도할 신자만이 성물을 축복하길 사제에게 청하였다는 것이다. 즉 성물을 방사 받아 그것을 함부로 선물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행 축복예식서에 “성물에 대한 축복은 그 성물을 통해 기도할 신자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다”는 해설을 실천하기 위함인 듯 보인다. 또한 사제는 방사할 때 그 성물의 의미나 역사를 해설하여 주었다. 그러나 100년 이후부터는 이러한 조항을 폐기하였다. 이렇듯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성물의 축복과 그것을 사용할 신자들의 교육적 차원을 염두에 두고 성물 축성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였다.

 

요즈음 핸드폰 고리나 묵주의 여러 형태 그리고 성물의 디자인과 그 성물을 대하는 신자들이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성물은 다양하고 화려하며 기도의 도구보다는 드러내는 멋의 일환으로 변형되어가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선물 차원에서 성물을 축복받아 선물하기도 한다.

 

‘성물에 축복하는 말씀을 놓다’라는 방사(放辭)라는 말은 이제 ‘축복’이라는 말로 사용해야 한다. 축복(benedictio)은 bene(좋은)과 dictio(말)의 합성어로 좋은 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날에 하는 덕담(德談)과 유사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좋은 말은 주님의 현존을 통한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축복’이란 용어가 하느님을 주어로 사용될 때에, 그것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적 통교를 가리킨다. 그래서 축복은 그 본질상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기억(anamnesis)이며 성령을 청하는 기도이다.

 

축복은 주님의 은총이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교우들의 다양한 세속 활동을 위한 건물들(새집, 학교, 도서관, 병원, 사무실, 공장, 가게, 체육관 등)에, 전례에 사용할 사물들(세례대, 주교좌, 사제적, 감실, 십자가와 공적으로 전시할 성화상 등)에, 교우의 신심생활을 돕는 사물들(음식물, 묵주, 스카풀라, 성모상, 성인상 등)에 행한다.

 

반면에 축성(consecratio)은 con(함께)와 sacratio(거룩함)이 결합되어 ‘거룩함이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여 예전에는 ‘성별’이라는 용어로도 사용하였다. 그래서 축성은 하느님에게 봉헌되어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되는 사람이나 사물들에 사용한다.

 

예를 들면, 미사거행에서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감사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 것을 축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성당을 지어 하느님께 봉헌할 때, 교구장 주교는 제대를 기름과 기도로써 축성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성직자에 오르는 서품이 바로 축성식이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온전히 하느님에게 속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전례에 사용한 사물들에 대해서는 축복과 축성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전례도구들은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전례에서만 사용되기에 다른 세속적인 것과 용도에 있어서 구별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스도교 축복은 미사에서의 감사기도 축복과 연결되어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초기교회에서는 각자가 만든 빵과 포도주를 봉헌했는데, 그중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될 것과 성찬 이후에 함께 나누어 먹을 것을 선별하였다. 나누어 먹는 애찬(agape)에 사용할 것들은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보면 미사의 감사기도 후, 영성체 전에 치즈, 올리브와 햇과일들에 대한 축복 기도문을 찾을 수 있다.

 

역사가 흐르면서 축복 기도문은 날로 증가하였고 1925년 판본에는 150가지의 축복들이 있었다. 1984년 공포된 현재의 축복예식서에는 39개의 항목으로 정리되었다.

 

준성사에 속하는 ‘축복’은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하는 거룩한 표징”이며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성사들의 뛰어난 효과를 받도록 준비되고, 생활의 여러 환경이 성화된다”(전례헌장 60항)라고 교회는 말한다. 교회 공동체의 간청에 의해서 영적 효력을 지니고, 성사들에 올바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자신의 삶의 자리를 성화시키는 거룩한 표징이라 하겠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교우들은 축복받은 성물들을 하느님인 것처럼 아주 소중히 다루었다. 왜냐하면 축복을 통해서 성물들은 하느님을 기억하게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은총을 청하게 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성물은 악귀를 쫓아내는 부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기억과 감사, 찬양을 드리게 하는 표징임을 명심하자.

 

[가톨릭신문, 2011년 10월 23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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