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16) 전례주년에 따른 전례색(典禮色 · color liturgicus)
그리스도 구원 업적 의미에 따라 달라 일반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참석하는 자리에 따라 옷을 맞추어 입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여행을 갈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옷이며 또한 짐의 크기도 옷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달리 사제들은 공식적인 옷이 정해져 있어 옷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지만 제의만은 전례시기에 신경을 써서 입는다. 그래서 많은 비신자들이나 특히 예비신자가 천주교의 전례에 대해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는 “미사를 거행할 때 사제가 입은 제의의 색깔이 언제 어떻게 바뀌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이다. 신자들 중에서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교회는 전례주년의 시기와 축일의 의미를 여러 가지 색들을 사용하여 그 상징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문헌인 「주년첨례」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 문헌은 전례주년의 의미를 잘 익히고 전례시기별로 해야 할 기도생활과 전례지식에 대해 잘 기술되어 있으며 전례시기별 제의 색깔이 나타내는 의미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신자들의 도리임을 강조한다. 이렇듯 색깔을 통해서 전례시기의 의미를 아는 것이 신자들의 도리라면 전례주년의 뜻과 시기별 색깔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전례주년(典禮周年·annus liturgicus)은 “한 해의 흐름 안에서 날들을 정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경건하게 기념하고 경축”(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항)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일년이라는 시간에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중요한 순간들을 잘 배치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전례주년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가게 되며 그분의 여정이 얼마나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교회에서부터 색들에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며 전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박해시기에는 로마인들이 즐겨 입는 평상복을 입고 예배를 드렸으나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 자유화(313년, 밀라노칙령)를 선포한 후에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은 로마사회에서 특정 직무의 표지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관료들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일반인들의 의복은 변화되었지만 성직자들은 옛 로마 의복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모든 예식의 전례복은 속옷(장백의)과 특수한 겉옷(제의, 달마티카)으로 구분한다. 장백의(alba)는 그 이름 그대로 긴 흰옷으로 다른 색을 사용하지 않지만 제의는 색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받아들여 12세기부터 다양한 색깔의 제의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제의 색깔은 13세기 초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때, 오색을 공식적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비오 5세(1566~1572)의 미사경본에 오늘날과 같은 전례색을 규정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례색을 약간 조정하였다(2002년 미사경본 총지침 346항 참조). 흰색은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다”(묵시 3,4)에서와 같이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따라서 주님의 파스카 시기와 성탄 시기의 시간 전례와 미사에 사용한다. 그 밖에 수난에 관계되는 거행을 제외한 주님의 축제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거룩한 천사들, 순교자 아닌 성인들의 경축일에 쓴다. 빨간색은 피와 열과 사랑을 상징한다. 따라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전례,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의 천상 탄생 축일, 그리고 순교 성인들의 경축일에 쓴다. 초록색은 생명의 희열과 희망 그리고 영생을 상징한다. 따라서 연중 주일에 입는다. 보라색은 참회와 보속을 의미하므로 대림과 사순 시기에 입는다.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에도 쓸 수 있다. 검은색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장례, 위령 미사, 위령의 날 등에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에 흰색을 입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 밖에 장미색은 관습에 따라 부활의 영광이 다가왔다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순 제4주일과 구세주 오심에 대한 기쁨으로 마음이 벅찬 대림 제3주일에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엄격한 보속 중에 부활과 성탄의 서광을 앞둔 중간에, 휴식과 기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색은 미사의 성대함을 의미하고 미사 중 흰색, 빨간색, 초록색 등을 대신할 수 있고 이상의 여러 가지 색을 따로 갖추지 못했을 때는 흰색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전례색은 제의뿐 아니라 감실, 제대, 독서대를 덮는 덮개에 사용할 수 있다.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의 특성과 전례주년에 따라 진행되는 그리스도교 삶의 의미를 겉으로도 더욱 효과 있게 드러내려는”(2002년 미사경본 총지침 345항) 교회의 노력을 이해한다면, 제의에 표현되는 전례색을 보면서 전례시기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묵상하기를 바란다. [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25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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