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6) 파공(罷工)과 파공관면(罷工寬免)
‘주님의 날’에는 하던 일 멈추고 신앙 돌아보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갔을 때 근본 유다주의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지나가는데, 길거리에 인적이 거의 없음에 의아해서 안내자에게 질문을 했다. “이 동네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나요?” 그러자 안내자가 “오늘이 토요일, 유다교에서는 안식일이라 밖에 잘 다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安息日, Sabbatum)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제7일에 ‘쉬셨다’는 것과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억압에서 ‘해방된 것’(신명 5,15)을 기념하며 거룩하게 지내고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여기며 몇 천 년을 지켜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톨릭에는 이런 것이 없느냐?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부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니게 한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을 ‘주님의 날’(묵시 1,10)로 불렀다. 이날에는 평소에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영적·육적 휴식을 취하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사랑의 실천과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거룩히 지냈다. 그래서 전례력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주일’이 교회에서 형성됐다. 이렇게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것을 옛 어른들은 주일날 “파공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회장직분」이라는 문헌에 보면 파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육신의 일을 파 이라 쥬일날 죵일토록 육신일을 파 고 텬쥬를 셤기며 령혼 졍을 도라보라 은 텬쥬의 세우신 법이라 이법을 직흴만 교우 불가불 다 직흴것이여오 직희지 아니 느 쟈는 대죄를 면치 못 니라 그럴지라도 도모지 직흴 수 업거나 혹 큰 연고 잇 날에는 신부의 관면이 얼슬지라도 파공질흴본분이 업셔지 니 비컨대 의외에 화 나 슈 가 날것 흐면 불가불 불을 거나 물을 막아야 것이니 이런 날에는 쥬일날이라도 일을 여야 것이오. ㅼ쥬일날에 혹 관 에셔 무슨 부역을 식희 다른 날노 밀외지 못 면 역 를 게 되 니라.” 위의 문헌의 내용을 보면 정말 엄하게 파공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파공 즉 육신의 활동을 자제하고 하느님을 섬기며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일을 어기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지 않아서 십계명의 제3계명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죄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화재나 수재의 재앙이 닥친 경우나 관청의 부역 명령이 있을 경우는 자동 관면이 됐다. 파공을 사제로부터 관면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파공관면(罷工寬免)’이라 한다. ‘부득이한 이유에 의해 파공(罷工)을 면허(免許)함’이라는 뜻으로 오전부터 하는 관면과 오후부터 하는 관면으로 나눌 수 있다. 오전부터 관면은 좀처럼 관면받기 어려웠다. 외교인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신자나 외교인 남편이 있는 여자 신자에게 허락됐으며 예수 성탄 대축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 성모승천 대축일 등의 4대축일은 파공관면을 일반적으로 할 수 없었다. 반면에 오후 관면은 매우 자연스럽게 허락됐다. 교회는 교우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최소한의 방법을 교회법 제1247조에서 알려주고 있다.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경배, 주님의 날의 고유한 기쁨 또는 마음과 몸의 합당한 휴식을 방해하는 일과 영업을 삼가야 한다.” 따라서 파공을 지킨다는 것은 미사 참례 외에 주일과 의무 대축일의 정신에 맞는 하루가 되게 하고 동시에 신심의 휴식도 되게 지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교지역인데다 경제적 어려움과 노동계의 형편 등을 고려해 주일 파공을 관면해 왔었다. 그러나 한국주교회의는 1989년 가을 정기총회에서 지금까지의 파공관면을 취소하고 1990년 사순절 첫날인 재의 수요일부터 이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파공 의무가 있는 날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또한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경우나 생계의 위협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이라면 파공 의무가 면제된다. 한국 천주교회는 교우들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중요한 요소인 주일파공의 가치를 재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일 의무를 주일미사 참례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으며 주일파공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일미사만 하면 일은 계속해도 상관없다는 의식을 지닌 교우들이 많다. 이에 반해서 개신교 신자들은 주일만 되면 자기가 하던 상점의 문을 닫아걸고 예배를 드리고 평소에 하지 않은 선행과 봉사를 하러 간다.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문을 여니까, 일을 나가니까 라는 이유로 파공 의무를 행하지 않는 이완된 신앙생활이 많이 아쉽다. 거기에다가 학생들의 경우에는 주말에도 학원에 가느라고 주일학교와 미사에 부모들이 보내지 않는 경우까지 생겼다. 요즘 일선 사목자들은 본당 교우들의 상황을 냉담교우가 30%, 어중간한 교우가 40%, 주일미사에 적극적인 교우가 30%라고 한다. 복음화에 있어서 외부로 향한 선교도 중요하지만 교회 내부에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교우들의 회두를 위한 사목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목을 위해서 옛 신앙선조들이 성심껏 지켜왔던 주일파공의 의미를 교육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11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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