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8) 노자성체(路資聖體 · Viaticum)
치유의 희망 · 영적 구원 얻는 것이 목적 본당 사무실이나 여성총구역장, 또는 선종봉사회장으로부터 급하게 전화 오는 경우가 있다. 주로 교우들 중에서 급하게 병자성사를 하실 분이 생겼을 때다. 예를 들면 “신부님! 5구역 2반의 이 마리아 자매님이 위급하십니다. 현재 00 병원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상태가 어떠십니까? 혼수상태인가요? 영성체는 하실 수 있나요?.” 나의 경우에는 수녀님과 여성총구역 간부들을 기본적으로 대동한다. 물론 구역장과 반장도 그곳에 가 있으라고 한다. 왜냐하면 병자에 대해서 사목자 뿐 아니라 본당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사목 활동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체를 준비한다. 죽을 위험에 처한 병자에게 노자성체처럼 좋은 영적인 약은 없기 때문이다. 노자(路資)성체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시작했다. 이는 이승을 마치고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 있어 동반자로서 가장 좋은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은 한국 천주교회에도 이어졌다. 「회장직분」에서는 노자성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우가 중병에 들어 세상을 떠날 때에 마지막 성체를 영하여 천당 길을 가는 노자(路資)로 삼을 것이며 이때는 병중이기 때문에 공심재를 지키는 것이 불편해 교회에서 특별히 관면해 공심재를 지키지 않아도 성체를 영할 수 있다. 이전에 성체를 모시는 성당이 적을 때에는 노자성체가 드물고 병자성사만 줬으나 많은 교우들이 종부성사 받기만 힘쓰고 노자성체 영하기를 등한시 여겼으니 노자성체 영함도 필요할 뿐 아니라 할 만한데도 아니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우들은 ‘종부성사’를 신부에게 청할 때 병자가 성체를 영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성경에서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열두 제자는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줬고(마르 6,13),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앓는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줘야 한다(야고 5,14)고 했다. 예수님의 병자에 대한 태도와 제자들의 활동은 초대교회에서도 이어졌고 트리엔트공의회에서는 칠성사의 하나로 확정했다. 그러나 이때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종부’의 의미를 강조해 종부성사(終傅聖事 · Extrema Unctio)라고 불렀으며 죽음에 임박한 중환자만이 대상이었다. 그래서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성사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이 성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신학적·역사적으로 깊이 연구, 고통당하시고 영광 받으신 주님께 죽음의 위험에 처한 환자를 맡겨드려 주님께서 그를 구원해주도록 하는 성사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죽을 위험’이란 말을 가능한 한 넓은 의미로 해석했고, 이 성사를 죽음과 결부시키는 관행을 피하고자 했다. 명칭도 병자성사(病者聖事 · Sacramentum unctionis infirmorum)라고 병자를 돕는 성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 횟수를 한 번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어느 교우가 죽을 위험에 처해 병자성사를 받았지만 얼마 후 회복돼 어느 정도 일상생활로 돌아왔다가 다시 죽을 위험에 처하면 성사를 또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병자를 단순히 죽음을 준비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죄에서 해방시키고 구원해 주시며 병고를 가볍게 하려는 구원사건의 차원임을 도유하면서 하는 기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님,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아무)를 도와주소서. 또한 (아무)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켜서 구원하며 병고를 가볍게 해 주는 데 있어서 거룩한 도유와 함께 고해성사와 노자성체가 큰 도움이 된다. 이 중에서 노자성체는 라틴어로 비아티쿰(Viaticum)이라 하는 데 ‘긴 여행을 위한 준비’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초기교회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두 가지 긴 여정에 있어서의 영적인 준비, 즉 세례와 마지막 영성체를 의미한다. 노자성체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증언을 325년 니체아공의회에서 찾을 수 있다. “죽음에 임박한 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옛 규범이 준수되어야 할 것이다. 그 규범에 따라 죽음의 위험에 처한 어떤 사람이라도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자성체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죽음의 순간에는 고해성사와 함께 성체를 모실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성체의 정규 집전자는 본당 사목구 주임과 보좌 신부, 원목 신부이다. 그리고 성직 수도회나 사도 생활단 공동체에 사는 모든 이에 대해서는 그 집의 장상이 정규 집전자이다. 필요한 경우 또한 관할 집전자가 적어도 양해할 것으로 추정되면, 사제나 부제는 누구든 병자에게 노자성체를 줄 수 있다. 다만 성직자가 없으면 비정규 성체 분배 직무를 받은 평신도가 노자성체를 줄 수 있다.”(병자성사 예식 지침 29항) 병자성사와 노자성체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자에게 병고에서 치유될 수 있다는 삶의 희망과 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영적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성사이다. 이는 본당 공동체가 함께할 때 그 구원의 공동체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25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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