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9) 재의 수요일(Feria Ⅳ Cinerum)
영광된 부활 맞이하기 위한 참회의 시간 우리는 사순의 시작으로 재를 얹는 예식을 한다. 그 이유와 의미를 어느 정도는 헤아리지만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필자는 재의 수요일에 대한 의미를 더 깊게 새기게 된 체험이 있다. 프랑스의 어느 수도회에서 피정을 하게 됐는데 마침 재의 수요일 전례에 참례하게 됐다. 그 수도회는 인상 깊게도 재를 머리에 많이 얹었다. 나는 그 예식이 끝나자마자 샤워를 했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다시 기도하러 나가보니 저녁기도와 저녁식사 때까지 한 명의 수사님도 머리의 재를 털지 않았다. 수도원의 복도는 수사들의 동선에 따라 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시간에 있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저 재처럼 나의 죄가 남아있겠구나!’ 그래서 나는 지나가던 친구 수사님의 머리에 묻은 재를 다시 샤워한 내 머리에 얹고 사순절을 다시 시작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재의 수요일은 초창기에는 ‘성회례(聖灰禮)’라고 불렀다. 즉 거룩한 재의 예식이라는 뜻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오래된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재를 얹는 예식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재의 수요일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수가 매년 줄고 있다. 주일에 거행되는 전례에는 참례하지만 재의 수요일은 수요일에 거행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재의 수요일과 설날이 겹친 적이 있었는데 재의 수요일 전례보다는 설날을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사순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지난해 팔마주일때 교우들이 각 가정에 가져갔던 성지가지를 태워, 재를 만들고 이를 머리에 얹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라고 사제는 말한다. 재의 수요일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40일간의 단식인 사순절(四旬節·Quadra gesima)은 354년에서 384년 사이에 로마에 등장한 전례시기로 예수님께서 세례 후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기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단식이었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이 단식이 매우 일찍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내기 위한 참회와 준비의 형태를 띠면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코린 5,8)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실천했다. 그런데 이 40일간의 단식은 수요일이 아닌 주일에 시작했다. 사순절의 첫 주일은 파스카 삼일로부터 정확히 40일 전이 됐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성 레오 대교황의 강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당시, 사순절 첫 주일에 바오로 사도의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2코린 6,2)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당한 기사를 읽었다. 레오 교황은 강론에서 “이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말하고 악마는 “어둠 속에 떨어졌던 사람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일어나고 사도의 열쇠가 그들에게 용서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을 본다”라고 사순절의 의미가 바로 파스카를 맞이하기 위한 참회와 용서의 시기임을 밝혀줬다. 그런데, 서방 교회에서는 주일에 단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6주간의 사순절 기간인 42일에서 주일 6일을 제외하면 36일밖에 되지 않았다. 6세기 초에 이르러 교우들은 실제로 40일간 단식을 원하면서 사순 첫주 이전의 수요일부터 단식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재의 수요일이 교황 성 그레고리오(St. Gregorius) 1세(590∼604)에 의해 사순절의 첫날로 성립됐고, 바오로(Paulus) 6세(1963∼1978) 교황은 이날 전 세계교회가 단식과 금육을 지킬 것을 명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재를 축복하고 머리에 얹는 예식이 있었을까? 처음부터는 아니다. ‘재’는 유다인들의 참회표지였으며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받아들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공적인 참회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어주고 그들의 참회 의복에 뿌렸다. 그러나 공적 참회자를 받아들이는 성 목요일의 화해예식이 사라지면서 이런 참회의 표지도 함께 잊혀졌다. 그러나 성가에서는 남아 있었다. 8세기 말의 「로마예식 22」(Ordo XXII)에 이런 묘사가 있다. 모든 백성은 팔라티노 언덕 기슭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 모였고 교황은 이곳에서 전례를 거행한 후 사순절 첫 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성녀 사비나 성당으로 행진하여 갔다. 행진하는 동안 “옷을 바꾸어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파묻혀 단식하며”라는 후렴을 노래했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영적 의미로만 남아 있던 전례문에 10세기 라인강 지역에서는 감각적 표현 방식을 덧붙이고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도입했다. 그래서 1091년 베네벤토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재의 수요일에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모두 재를 받을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재를 얹는 예식이 들어있는 라인 지방의 예식이 12세기 「로마주교 예절서」에 수록됐다. 장례미사의 감사송에서 우리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라고 기도한다. 이처럼 사순시기의 재는 단순한 재가 아닌 회개이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기 위한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이 사순시기의 재를 얹는 예식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수가 줄어 아쉽다.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드러나신 부활의 영광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가 달려있다. 전례주년의 가장 핵심인 성주간 기간만이라도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례하여 주님의 부활이 바로 우리 자신의 부활로 느껴지는 기쁨의 시간들이길 기원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8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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