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0) 성주간(聖週間 · hebdomada sancta)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근본 되는 시기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요즘처럼 집안에 달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 흰 바탕에 날짜가 크게 적힌 그런 달력이었다. 이발소에 가면 그림이 있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누구 생일, 어느 분 기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렇듯 가족들의 중요한 날들인 생일과 기일, 그리고 결혼기념일 등이 가족들을 묶는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2000년이라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종교 중에서 가장 잘하는 곳이 바로 가톨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론을 펼치면서도 기성 종교의 장점을 피력하는 「무신론 2.0」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책을 보면 가톨릭교회의 우수성과 힘에 대해 말하면서 전례주년을 손꼽고 있다. 주기적으로 무엇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은 인간 본성과 영혼의 활동에 적합하며 사건을 현재화하는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창립초기부터 전례주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전례력에 대한 의미와 전례교육에 철저했다. 성주간의 의미, 특히 성삼일에 진행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구원사건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순교의 시기도 부탁했다. 그 예로 다블뤼 주교(1818~1866)님은 서울 의금부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천주교에 대한 훌륭한 호교론을 펼치셨다. 그분은 사형이 결정돼 충청도 보령(保寧) 수영(水營)으로 이송됐다. 그분은 죄수복을 입고 고문으로 상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이송되는 도중, 처형 예정 날짜인 3월 30일 성 금요일인 처형일이 다소 연기될 기미가 있음을 알고 “성 금요일에 죽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소원대로 3월 30일 성 금요일에 수영(水營)에서 약 10리 떨어진 ‘갈매못’에서 순교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렇듯 예수님의 구원 신비가 절정에 이르는 성주간의 중요성을 목숨으로 증거한 다블뤼 주교님의 모범은 어느 시기에나 필요하다. 그렇다면 성주간에는 어떤 일들을 기념하고 또 어떤 예식들을 통해서 구원의 신비를 현재화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聖週間·hebdomada sancta)은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구원 신비가 펼쳐지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주간을 처음부터 잘 기념했던 곳은 그 사건들이 벌어졌던 예루살렘이다. 성지주일부터 부활까지의 사건들을 다루는 전례가 풍부하게 발전했고, 이에 대한 자료를 4세기 말에 ‘에제리아’라는 여인이 자신의 여행기를 통해서 전해주고 있다. 이 당시에는 복음사가들이 묘사한 사건들을 재현하는 예루살렘의 전례를 모방하기 위해서 서방전례는 이와 비슷한 예식들로 구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성주간의 기원이다. 중세에는 성주간을 ‘고난주간’이라 불렀으며 예수의 수난을 신비 안에서 기념하기보다는 극화(劇化)함으로써 고통과 감상적인 연민의 측면을 부각했다. 그래서 예수 수난의 구원론 측면과 죽음에 대한 승리, 부활의 측면들이 희미하게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 본래 성주간의 구원 신비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전례로 쇄신했다. 성주간은 ‘성지주일’ 또는 ‘팔마주일’로 알려져 있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한다. 비록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이기는 하지만 전례는 이전의 사순시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성지를 흔들며 행렬을 하는 동안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현한다. 예수님을 왕으로 공경하는 이 승리의 행렬에 모든 교우가 참석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님이 우리의 왕임을 확인한다. 이날 전례의 중요한 두 예식은, 4세기경부터 예수 부활 한 주 전 주일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렬’과 서방교회에서 5세기경 이 마지막 준비 주일을 수난주일이라고 해 ‘수난복음’을 봉독했던 예식이다. 이 두 예식은 9세기경에 통합돼 기본적인 틀을 형성했다. 성주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Triduum sacrum)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성 암브로시오가 이날들에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안식에 드시고 부활하셨다고 전해주었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지극히 거룩한 삼일”이라고 말했다. 파스카 성삼일은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하고 부활 대축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는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거행한 최후 만찬과 그때 설정된 성체성사를 기념하기 위해 거행되는 미사이다. 예식의 특이한 것은 대영광송 때 성당 종과 제대 종을 치고, 그 후 부활 성야 미사의 대영광송 전까지 타종하지 않고 대신 나무로 만든 딱따기를 사용한다. 수난 시기에 십자가와 성상들을 보자기로 가리는 것을 ‘눈의 재(齋)’를 지키는 것으로 생각한 것처럼, 이 기간에 타종과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는 것은 ‘귀의 재’를 지키는 것으로 여겼다. 성삼일 기간 동안 오르간 연주에 대한 지침에 변화가 있었다. 1958년 경신성은 ‘성음악과 거룩한 전례에 관한 지침 De Musica’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시기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그중에 사순시기와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주간을 포함시켰다. 이 규정은 몇 번의 변화를 하다가 2002년 반포된 로마미사경본 제3판에서는 성삼일 동안의 타종은 금지하면서 “성가를 도와줄 목적인 한 오르간과 다른 악기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 반주를 위해서는 허용하고 있다. 주님 만찬 미사가 끝나고 성체를 ‘수난 감실’에 모시고 성 금요일까지 철야를 하며 성체조배를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고뇌와 수난을 통한 지극한 사랑을 묵상하고 감사드린다. 성 금요일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해 ‘요한의 수난 복음(18-19장)’을 입체낭독하고 십자가를 경배하는 예식을 거행한다. 이날 단식을 한다. 성 토요일에는 아무런 예식도 없는 날이며, 이날 밤에 모든 성야의 어머니인 ‘예수 부활 성야 미사’를 한다.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및 세례 갱신식’, ‘성찬 전례’ 등 4부로 이루어진 장엄한 미사로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기뻐한다. 가톨릭교회의 전례주년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근본이 되는 시기인 성주간에 대한 교우들의 의식이 예전 같지 않다. 세상의 바쁨과 여가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문화 안에서 성주간 전례를 지나쳐 버리고 부활절 미사만 참례하는 의식이 확대되고 있어서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15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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