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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32: 공소예절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13 조회수5,831 추천수0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2) 공소예절(公所禮節)


신앙 다지고 친교 나누는 모범적 전례문화

 

 

필자가 어렸을 때에 막 생겨난 본당에서 교리를 가르쳐주던 여회장님이 있었다. 그분은 교리도 가르쳐주었지만, 현재의 제대회, 해설단, 독서단 일을 모두 맡아서 했다. 때로는 환자 방문을 본당 신부님과 함께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수녀님들이 본당에 파견되면서 여회장님이 할 일이 줄어들고 결국에는 떠났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들은 것은 ‘공소’(公所)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로 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공소’라는 곳이 친근하게 와 닿았고, 유학하면서 만난 평신도 선교사로부터 공소에서의 선교사 역할이 무엇인지를 들으면서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2011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공소는 793개이다. 10년 전보다 281개가 감소했다. 본당으로 승격되는 경우들이 많고,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본당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교우들에게는 ‘공소’라는 말 자체가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골이나 섬의 경우에는 아직도 많다. ‘공소’(公所)는 본당(本堂)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때때로 공소 교우들의 모임 장소인 ‘경당’(輕堂)을 가리키기도 하며, 본당 신부가 방문해 행하는 판공성사 때 이루어지는 모든 예절과 성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에서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교우들이 모여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예식을 ‘공소예절’이라고 한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순교로 사제가 없을 때에 공소예절을 많이 행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전례생활 지침서인 「회장직분」에는 다음과 같이 공소예절을 설명하고 있다.

 

공소예절 후에 회장이나 본당의 원로로부터 문답과 도리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이를 ‘주일학교’라 했다. 현행 주일학교는 청소년에게 해당되나 옛날에는 성인 신자 모두에게 교육을 실시했다. 이러한 교육은 전례주년과 축일에 맞추어 커리큘럼이 짜져있었고 첨례표와 성경직해라는 책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으며 성교공과의 기도문을 암송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시대에 지금보다 더 철저한 전례와 교리교육을 전 신자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또한 봉사와 선교에도 힘썼다. 단순히 주일에 미사만 봉헌하면 주일의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보다 주일에는 모든 것을 끊고 본당공동체와 하나 돼 배우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하루를 지낸 것이다.

 

여기에서 공소회장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회장직분」에서 “회장은 사제와 교우 사이에서 중재하는 사람이므로 공소에 대해서나 그 공소에 있는 각 교우의 필요한 사정이나 원하는 것을 본당 신부께 중재해 아뢰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며 본당 신부와 공소 교우들 사이의 중재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례에서도 평신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제가 계시지 않을 때에는 사제 대신 평신도로서 할 수 있는 것들로써 반드시 대신해야 할 것인데, 예를 들자면 주일과 축일에 신자들을 모아 공소예절을 거행하고 대세를 주거나 혼인예절을 해주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간다. “회장이 비록 자기 주관대로 어떤 법이나 금지하는 규정을 내는 권한은 없을지라도 영신적인 일에 있어서는 공소의 중심이요 어른이다.” 어찌보면 본당의 조직운영이나 행사 위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요즈음 ‘사목회장’의 역할과 비교가 되리라 여겨진다. 

 

지금은 이 공소에 적어도 본당 신부가 한 달에 한 번씩은 가서 ‘고해성사’를 주고 ‘주일미사’를 드리고 식사도 함께한다. 아무래도 교통수단의 발달과 사제가 늘어나면서 생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신부가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공소를 방문했기 때문에 이를 ‘춘추공소 때’라 불렀고, 또 신부 방문 때 주로 집행되는 성사가 판공성사(判功聖事: 교리시험, 고해성사, 미사, 영성체)였기 때문에 신부가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전에 공소 방문 일정과 교우들의 유의해야 할 점을 기록한 배정기(排定記)를 미리 공소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대해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해 공소의 상황을 적어 신부에게 보고했다. 

 

교황청의 경신성에서 1988년 6월 2일에 “사제 부재 시 주일 전례”(De celebrationibus dominicalibus absente presbytero)에 대한 지침인 ‘크리스티 에클레시아 Christi ecclesia’를 발표했다. 이 지침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일에 도저히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요청한 주교들의 질의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지침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본당 신부가 없고 다른 신부를 부르지 못할 때 교우들은 이웃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례하기를 권하면서도 그것도 안 될 상황에 교우들이 할 수 있는 전례를 알려줬다.

 

우선 교구장은 사제 부재 시 주일 전례를 거행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그와 같은 전례는 모두 사목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교우들에게 충분히 교육시켜 전례가 올바로 이루어지고 충분히 평가되도록 해야 한다. 이 주일 전례는 부제나 올바로 교육을 받은 평신도가 주례할 수 있다.

 

보통은 1)시작예식, 2)말씀전례, 3)찬미기도, 4)영성체 예식, 5)마침예식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찬미기도’는 보편지향기도, 시편, 찬미가 또는 호칭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감사송과 감사기도는 주례사제의 기도이기에 공소예절에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공소’라는 공간은 단순히 주일 전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우들이 평일에도 조과(早課:아침기도)와 만과(晩課:저녁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판공을 위해 신부가 방문할 때는 신앙을 검증받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으며 성체성사로써 주님과 일치하는 영적 기쁨을 축제로 더욱 충만하게 하는 전례문화의 마당이다. 본당들이 이런 ‘공소’의 문화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가톨릭신문, 2012년 5월 6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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