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4) 혼인강복 - 혼인성사 중 강복
부부 맺어주신 하느님 축복 ‘기쁨’으로 승화 혼인과 관계해서 본당신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자녀가 결혼할 때는 자녀의 미래만 좋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상대방이 성당에서 혼인예식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비신자와 혼인에 관면혼도 하지 않고 사회결혼식만 올려서 자녀를 조당에 걸리게 하는 부모 신자가 있다. 속이 터질 것 같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일생에 한 번 있는 혼인이니 화려하게 해주어야 한다며 돈을 융자받아서까지 호텔에서 몇 억짜리 혼례식을 치르는 신자 가족 이야기를 들을 때면 ‘본당신부로서 제대로 신앙교육을 못시켰구나!’라는 자기반성에 가슴을 치게 된다. 반면에 상대방이 비신자임에도 잘 설득해 성당에서 미사와 함께 혼인식을 치르는 젊은 부부를 만나면 정말로 고맙다. 사람들은 흔히들 혼인을 중요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지만, 혼인이 무엇이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냥 젊은 두 사람이 혼기가 되어 만나서 살아가면 다 알게 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 너무 사치스러우며 장난기 가득한 이벤트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예식장의 문화가 있다. 특히 혼인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축의금 전달과 식사에 집중해 혼인하는 신랑 신부에게 진실로 필요한 관심과 기도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혼인문화에 대해서 천주교는 올바른 혼인문화를 이끌고 있다고 하겠다. 천주교 혼인식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을 찾은 비신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러하다. 일반적으로 예식장에서 하는 혼인식에 비해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장엄하고 특히 사제가 팔을 들어 장엄하게 부부에게 강복하는 모습은 매우 거룩하고 감동적이라고 한다. 미사 중 혼인예식은 말씀 전례에서 사제가 강론을 한 후에 행해진다. 사제가 신랑 신부에게 하는 훈시, 자유의사와 신의와 자녀출산 및 교육에 대한 질문과 대답, 신랑 신부의 동의, 반지의 축성과 교환 순서로 이뤄져 있다. 신랑 신부가 혼인식의 주인으로서 그들에게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혼인은 기본적으로 서로가 사랑해야 한다는 부부애(夫婦愛)와 자녀출산과 교육의무를 통해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목적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혼인이 주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혼인식을 하기 위해서 신랑 신부는 ‘혼인 교리교육’을 이수하고 혼인서류를 준비해 본당신부와 면담을 한다. 두 사람의 혼인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인들을 선정하고 혼인반지를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 혼수감 준비와 식사준비, 청첩장 돌리기 등도 중요하지만, 혼인생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혼인식 준비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렇게 잘 준비한 신랑 신부는 사제가 집전하는 혼인성사에서 하느님이 두 사람에게 내려주시는 크나큰 축복인 혼인강복을 받는다. 초기 천주교 문헌인 「회장직분」에는 다음과 같이 혼인강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혼인강복은 주로 규수-신부-에 대해 하는 것이며 부부가 평생 하느님의 은총으로 한마음 한몸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한 은총을 사제가 청하는 것이다. 결혼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계약이며 그 어떠한 이유와 권한으로서도 파기할 수 없는 혼인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또한 자녀들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낳고 교회의 교리대로 훈육하여 성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번성하며 이웃들에게 성가정의 모범이 되는 것이며 성서에 나온 거룩한 부녀들을 본받고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신부를 사랑하여야 한다.” 혼인의 아름다움은 젊은 부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부부를 결합시켜주신 하느님의 축복과 교회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이 강복을 통해서 천상적 기쁨으로 승화된다. ‘주님의 기도’ 후에 하는 이 혼인강복은 미사 끝에 참례한 신자에게 행하는 강복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혼인강복은 혼인성사에서 삭제할 수 없는 중요한 예식이다. 이렇게 혼인강복을 받은 부부들도 사회이혼을 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인무효 소송을 하기 위해 교구법원을 찾는 신자부부들이 있다. 완전히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혼인하기 전에 미리 교육하고 면담을 하며 교회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서약까지 한 부부들도 가정생활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매리지 엔카운터(Marriage Encounter)’와 ‘아버지 학교’가 있는데 교구마다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결실이 생기고 있다. 현대영성가로서 유명한 안셀름 그륀 신부는 ‘혼인성사’라는 저서에서 이런 예를 든다. “나는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호언하는 부부가 있다. 하지만 남편은 별생각 없이 약속한 시간에 집에 오지 않아, 그의 아내는 사랑을 담아 요리한 음식을 놓아둔 채 두 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부부에겐 서로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지금 해야할 바를 행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일상의 사랑이 필요하다.” 혼인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며 두 사람이 사랑을 완성해 나아가는 여정이라 하겠다. 이러한 여정에 주님께서는 늘 함께하고 계시다. 다만 우리가 그분을 함께 가자고 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이 제대로 매일의 축복을 못 해주고 있다. 이제 주님께 고개를 돌리고 그분을 초대해 그분의 사랑이 가정에 넘쳐흐르기를 청해야 한다. 함께 기도하는 부부는 주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깨닫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6월 10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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