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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37: 대재(단식재)와 소재(금육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8 조회수5,482 추천수0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37) 대재(大齋 · jejunium · 단식재)와 소재(小齋 · abstinentia · 금육재)


절제 · 극기로 그리스도 뜻 묵상 · 사랑 실천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금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유럽은 오랜 그리스도교 문화로 인해서 금요일에는 육식하지 않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기에 금요일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해물 스파게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절제와 극기의 ‘재(齋)’를 지키는 전통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단식재’와 ‘금육재’가 있는데 이를 예전에는 ‘대재’와 ‘소재’라고 불렀다. 옛 교우촌에서는 참된 신앙생활의 척도 중에 하나인 대재와 소재를 지키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고 어른들은 교육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배곯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영양과다로 인해서 성인병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옛 신앙선조로부터 이어온 소재와 대재가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간다면 절제의 미덕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생활화하고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재(齋, abstinentia)라는 말은 먹고 마심의 절제 또는 전폐를 지칭하며, ‘재일’(齋日)이란 바로 단식 또는 절식을 하는 날이다. 일반적으로 ‘재’라고 할 때는 1)심신의 건전한 관리를 위한 절식, 2)대재(大齋)에 대응해 소재(小齋)를 뜻하며, 3)절주(節酒), 금주(禁酒)까지도 포함해 이르는 말이다. 소재는 작은 재 즉 육식을 하지 않는 재이고, 대재는 큰 재 즉 단식을 하는 재로서, 신자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상기하며 지키는 것이다. 

 

1923년 작성된 「회장직분」에 보면 대재(단식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루에, 다만 한 끼만 먹되, 오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저녁에 조금 요기하는 것을 허락하고, 어떤 사유가 있으면 점심을 저녁으로 바꾸어 점심에 요기만 하고 저녁에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조선 교우들의 풍습으로 볼 때, 저녁에 요기할 때는 밥 반 사발이나 혹 죽 한 사발을 먹는 것이 적당하며, 계란이나 우유와 간단한 다과 종류는 점심에도 먹고, 저녁 요기에도 먹을 수 있으며, 점심과 저녁 요기할 때 외에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이나 차 같은 것을 마셔도 대재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당시에 대재를 지켜야 하는 날에 대해서 말한다. ‘사순시기의 주일 외에 모든 날과 사계(四季, 일년 4계절에 각각 3일씩 단식하고 금육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기도하던 시기) 때와 성령 강림 전날과 성모 승천 전날, 모든 성인의 날 전날과 예수 성탄 전야 때이다. 그런데 조선에는 교황께서 특별한 관면을 내리시어 사순시기 금요일과 예수 성탄 전야 때만 대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식사를 금하는 단식과 달리 소재(금육재)는 ‘가축의 고기와 고기죽과 고깃국을 금하고, 계란이나 다과 종류나 음식을 준비할 때 쓰는 각종 양념이나 반찬을 준비할 때 쓰는 가축의 기름 등은 금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정한 소재일은 다음과 같다. 즉 일년 중 모든 금요일과 사순시기와 사계 때 토요일, 재의 수요일, 성령 강림 전날, 성모 승천 전날,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 예수 성탄 대축일이다. 조선에는 교황께서 특별한 관면을 주셔서 일년 중 모든 금요일과 사순시기 때와 사계 때 수요일, 성령 강림 전날, 성모 승천 전날만 소재를 지키면 된다.’

 

지금과 달리 예전의 교회규정은 매우 엄격했고 몸에 대한 절제를 강조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단식과 금육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통과 대축일 준비만을 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이 자선과 연결돼야 함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대목은 「회장직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선의 교우들에게는 특별히 대소재에 많은 관면이 있으니 그 대신 사순시기에 매주 묵주기도 5단을 바치거나 자선 행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병인박해(1866년)에 관해 서술 중에 당시 증거자들이 서울로 압송돼 가면서도 고기 음식을 소재날이라고 해 먹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평택 읍내에서 포졸들은 선교사들에게 고기가 들어 있는 훌륭한 점심을 대접했다. 그러나 그날은 소재날이었으므로 선교사들은 식사를 들려 하지 않았다. 포졸들은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어, 천주교 법규를 지키기 위해 그런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들이 알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급히 다른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소재를 지킨 당시 선교사들과 이런 선교사들에게 호의를 베푼 포졸들의 마음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이런 대재와 소재는 왜 생겼을까? 초기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는 부활사건을 기리는 주일과 부활절이었다. 시리아에서 엄격한 생활을 하던 은수자들로부터 부활 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축일 전 하루나 이틀 동안 엄격한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하는 40일인 사순절이 생겼다. 단식은 본래 그날 한 끼니만 제대로 식사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저녁 식사를 하게 했다. 그 후 점차 교회의 단식 규정이 세분화되고 엄격화되면서 육식과 술을 금하는 금육 규정이 첨가됐다. 중세기에 오면서 성직자들은 사순절뿐 아니라, 일년 중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육식과 음주를 절제하라는 엄격한 규정도 있었다.

 

대재와 소재가 비록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내적·외적 준비와 애긍시사(哀矜施捨), 즉 자선이라는 좋은 의도를 지니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시대와 지역, 그리고 직업과 나이 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와 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교황 바오로 6세는 1966년 속죄와 단식 규정을 완화시켰다(교령 「Paenitemini」 1966. 2.17). 대재인 “단식은 그날 점심 한 끼만 충분하게 하고 아침과 저녁에는 그 지방의 관습에 따라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해 단식의 법적인 의미만 남기고 “단식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규정은 각국의 주교협의회에” 맡기며 조절과 적응을 지역교회에 일임했다. 1983년에 개정된 교회법 제1251조에 ‘재의 수요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신 성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가 지켜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대상 나이는 제1252조에서 14세에서 60세까지로 정했다. 소재인 금육에 대해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모든 금요일의 금육을 폐지하고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 기간의 매 금요일과 성 금요일에 한하도록 축소했다.

 

이러한 단식과 금육 규정의 완화는 ‘재 지킴’의 폐지 또는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난과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며 현시대에 맞는 절제와 극기를 통해 사랑의 실천으로 향해야 한다는 ‘재 지킴’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절제하고 극기하는 삶의 방식이 멀게만 느껴지는 풍요로운 시대에 ‘재 지킴’은 그리스도교 정신을 다시 일깨우는 몸짓이 아닐까 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7월 29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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