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거룩한 장소 모세가 호렙 산에 올라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인간은 모든 곳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일상적인 사물에 둘러싸인 곳에서도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특별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공동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는 장소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았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에 있던 성전을 친숙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로마인들에 의해 이미 완전히 파괴되어버렸을 때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유일하고 참다운 성전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세례받은 이들의 공동체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장엄한 예식을 통하여 봉헌되는 성전 건물을 마련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신약을 통하여 이룩하신 새 시대를 구약의 성전의 시대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에 속하는 것으로 창조 질서에 상응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질서로 확인된 결과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한 공간 안에 머무르면서 삶의 모든 것을 수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노동하는 공간과 여가를 위한 공간 사이에 변화를 모색합니다. 또한 지상의 현실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와 최대한 온전하게 하느님에게 몰입할 수 있는 장소를 찾습니다. 하느님과 만남을 위하여 마련되어 축성된 장소들은 때로 매우 수준 높은 예술품으로 장식됩니다. 그 결과 이러한 축성된 장소는 그 어떤 장소에 비해 인간의 모든 감각이 하느님의 신비에 쉽게 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자신의 혼인성사를 성당이 아니라 배 위에서 거행하고 싶었던 한 청년이 주례 사제에게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례 사제는 “우리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며 매우 적절하게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 청년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하느님의 돌보심을 동일하게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2011년 12월 18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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