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황금 - 영원한 광채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묵시록은 황금 도성, 곧 천상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도성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건설하신 장소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마침내 가게 되는 곳입니다. 이 도성의 건축 구조는 순금과 열두 개의 보석과 진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성문은 늘 열려 있지만 악을 멀리하고, 하느님 어린양의 생명부에 이름이 기록되어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귀금속에 속하는 금은 이 도성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물론 인간의 기쁨을 위해서도 빛을 발합니다. 한편으로 황금은 인류 역사에서 강한 매혹의 근거로 인정받습니다. 황금은 그 광채로 매력을 풍기고, 그 희소성으로 가치가 높으며, 불과 녹으로도 부식되지 않기에, 영원히 지속되는 금속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빛나는 태양’으로 황금은 빛과 하늘의 상징이 되었고, 특히 하느님의 성전을 꾸며 예배의 장식으로 지금까지 사용되어 왔습니다. 파트모스의 예언자 성 요한은 천상 전례에서 금향로를 사용하여 향 연기가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8,3 참조). 다른 한편으로 황금은 위험하여 파괴될 수 있는 부의 상징으로도 여겨졌습니다. 많은 신화와 전설은 황금에 저주가 내리는 것을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우상으로 숭배하여 그 귀중한 가치의 색을 바래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고대 신화는 마이더스 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신들은 마이더스 왕에게 소원을 들어줄 것을 약속하였고, 황금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그는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그는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지는 음식마다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들로부터 받은 선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신들은 이 소원도 들어주었지만, 한 신이 그의 귀를 길게 늘여버려서 그는 당나귀 귀를 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워 그 귀를 긴 두건으로 가리고 살았습니다. 이 신화는 황금에 대한 욕심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두 주인, 곧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신(마태 6,24 참조) 까닭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의 전례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목적으로 금은보석을 이용합니다. 이처럼 전례에서는 물질적으로 귀중한 것들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초월성을 표현하려 합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목적은 또 다른 목적, 곧 어려운 이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금과 은으로 제작된 전례 도구들이 때로는 빈민 구제를 위해 매각되기도 합니다. 하느님 예배는 세상의 모든 금을 포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금을 은행의 금고에 숨기거나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일부를 전례 거행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금반지나 다른 귀중한 물품을 선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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