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성당 (1) ‘교회’라는 단어는 우선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성찬례와 성사를 거행하고 시간경과 기타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건물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당은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시간에도 감실 앞에서 기도하려는 신자들이 빵의 형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경배드리기 위해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당 건물 양식은 시골의 작은 성당부터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콘크리트와 철골로 건축된 성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폴 클로델(Paul Claudel)은 자신이 연출한 연극 ‘선포’에서 고딕 양식 성당 건축가의 입을 빌어 “심연같이 생긴 성당도 있고, 불타는 난로 같은 성당도 있습니다. 또 다른 성당은 매우 예술적으로 건축되어, 마치 손을 대면 소리가 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오래된 예배 공간은 불가피하게도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은폐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다시금 고층 건물의 그늘에 파묻혀 건축되는 성당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주택가에 지어지는 경당들도 등장합니다. 시골의 경우 대부부의 성당들은 마을 중심부에 자리를 잡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납니다. 아니면 산이나 언덕 위에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신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적 자기 이해에 따르면 믿음이란 단지 개인적인 사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적인 사건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당은 봉헌되고, 분리되고,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입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성당을 건축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을 포기하고, 단지 하느님 예배를 위해서만 봉헌되는 거룩한 장소 대신 이른바 다목적 공간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성당을 지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이러한 다목적 공간의 마련은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물질적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과 ‘속’을 더는 구분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모든 종교에 전제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곧 인간은 한 공간 안에서만 살면서 활동하지 않고 경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물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나들어야 한다는 사실과 노동과 휴식 그리고 축제와 기도를 위한 시간의 경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는 인간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소여를 매우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2012년 2월 26일 사순 제1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성당 (2) 오늘날에 와서 오로지 하느님 예배만을 위한 성당 건물들이 다시 건축되고 있습니다. 물론 점점 더 많은 새로 짓는 성당 건물이 콘서트홀과 유사한 공간으로 개조되는 염려스러운 추세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성당 안에서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영적 음악 연주가 묵상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주 시작 전 영적 말씀을 봉독하고, 제대 위에 촛불을 밝히고, 가능한 한 박수를 자제한다면 말입니다. 성당 안에서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시편 115,1)라는 시편 구절이 적용된다면 좋을 것입니다. 성당의 본질은 성전 봉헌 예식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참회 예식을 거행할 때, 주교는 봉헌 예식에 참석한 신자들과 성전의 벽에 성수를 뿌립니다. 그리고 주교는 독서대를 축성할 때, 하느님의 말씀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신자들의 귀와 마음을 파고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제대 도유를 한 다음 주교는 성전 벽의 열두 곳을 성유로 도유합니다. 성전은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해서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주교는 제대, 신자들, 성전 벽에 분향합니다. 분향은 봉헌되는 성전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드디어 촛불을 밝히면서 주교는 “그리스도의 빛이 당신 교회를 비추고 모든 백성이 진리로 충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신앙인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은 ‘하늘의 거처’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여정에 놓인 영적 쉼터입니다. 인간은 말씀과 성사를 통한 순례의 여정에서 양식을 얻기 위하여 이 쉼터를 즐겨 찾아야 합니다. [2012년 3월 4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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