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독서대와 강론대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말씀의 식탁이 신자들을 위하여 풍부하게 차려지기를 바랐습니다. 교회 전례에서 말씀의 식탁에서 하는 말과 빵의 식탁에서 하는 말은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빵의 식탁은 제대를 의미합니다. 미사 거행의 주요 두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 전례와 성찬 예식은 각각의 진행의 중심에 고유한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독서대는 말씀 전례의 중심이고, 제대는 희생 제사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 늘 현존하신다고 공의회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특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인격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찬 예식의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미사의 희생 제물 안에 현존하십니다. 또한 성전에서 성경이 봉독되면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시는 말씀 안에서 작용하며 현존하십니다. 오늘날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는 거의 대부분 독서대입니다. 독서대에서는 독서, 화답송, 복음이 낭독됩니다. 부활 성야 때에는 부활 찬미가를 독서대에서 노래로 부릅니다. 미사 강론은 독서대에서 선포된 성경 말씀을 해설하고 구체화합니다. 그래서 강론은 독서대나 사제석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주교는 오래된 전통에 따라 가능하다면 자신의 주교좌에 앉아서 강론합니다. 어떤 경우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선포된 말씀이 또렷하게 들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이가 잘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성전 공간이 구식과 현대식으로 다양하게 건축되기 때문에 독서대의 자리에 대한 통일적인 규정을 마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합니다. 성당 건축의 역사적 흐름에서 볼 때 이러한 어려움과 관련한 다양한 해결책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독서대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존엄을 강조하기 위해 독서대는 흔히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독서대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독서대(Ambo)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위로 올가감’을 의미하는 ‘아나바이나인’(anabainein)에서 연유합니다. 독서대는 대부분 예술적으로 장식됩니다. 이러한 장식을 위해 요한복음을 가리키는 독수리의 상징을 사용합니다. 많은 곳에서는 돌로 만든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미사 거행 때 성서 봉독을 위한 독서대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대성당에도 이런 모습의 독서대가 있습니다. [2012년 5월 20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독서대와 강론대 (2) 독서대가 대부분 제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나중에 도입된 강론대(Kanzel)는 성전의 회중석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강론대는 오직 강론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강론대는 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성찬식 거행 때 하는 그날 독서 내용과 관련 있는 강론은 종종 설교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허한 열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강론대에서 하는 강론의 전통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대성당, 탁발 수도회의 성당, 바로크 양식의 순례지 성당의 강론대는 위대한 강론가들의 강론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기에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사보나롤라(Savonarola), 산타클라라의 아브람(Abraham a Sancta Clara)을 포함하여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을 연상케 합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시대, 특히 바로크 시기에 제작되어 설치된 많은 강론대들이 가톨릭교회의 성당들 안에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론대는 조각상, 부조, 그림으로 장식되었습니다. 그것들은 하느님 말씀 선포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식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이 모습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 말씀을 위한 기름진 땅을 준비하고 있는지, 없는지 물어 보도록 합니다. 강론대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영적이고 예술적인 유산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최근에 개최된 공의회 이후 많은 강론대가 일종의 ‘성상 파괴 운동’에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강론대를 독서대로 변형한 결과는 오래된 강론대의 일부를 부수거나 제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강론대를 미사 거행 때, 무엇보다도 강론을 곁들이는 묵상 전례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의 식탁이 다시 풍요롭게 차려져야 한다는 공의회의 요구를 단순히 전례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곳에서 이미 이른바 ‘전례적 수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거룩한 말씀과 거룩함의 차원을 모두 왜곡시켜서 말씀을 해설하고 밝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독서대와 오래된 강론대는 언제나 부드러운 지혜와 예언자적 분노와 조화를 이루며 말씀을 잘 선포하여 듣는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울리고 열어 놓도록 해주는 강론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10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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