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종 “사랑하올 대주교님, 저희에게 종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남자가 비엔나 대교구 교구장 추기경에게 이러한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간절히 바라던 종은 인간들을 고립에서 이끌어 내어 멀고 높은데 계시는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곧 온전히 충만한 생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할 것입니다. 오늘날 도시 안에서는 종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습니다. 고층 건물의 벽이 종소리를 삼켜버립니다. 비엔나의 성스테판 대성당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종들인 푸머린(Pummerin)마저도 그 소리를 멀리 울려 퍼지게 하지 못합니다. 잘츠부르크의 여러 지역에서도 웅대한 대성당의 종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 도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카푸친 수도원의 작은 종이 울리는 소리를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의 경우 사정이 다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종소리를 듣고, 많은 물질적 예물을 봉헌함으로써 종각이 비어 있지 않도록 합니다. 종과 관련하여 “나는 산 이를 불러 모으고, 죽은 이를 애도하고, 뇌우를 물리친다.”(vivos voco, mortuos plango, fulgura frango)라는 오래된 격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으로 뇌우를 물리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은 종이 맡아 하는 일이고, 이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 종을 제작할 때 헌금을 아끼지 않습니다. 시골 본당의 장례식 행렬 때는 모든 종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종은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이들을 기도와 미사에 참석하도록 불러 모읍니다. 7세기 때부터 종소리는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을 기도에 초대해왔습니다. 나중에는 낮에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가난한 사람들의 시계 역할만 한 것이 아닙니다. 종은 기도를 알리고 촉구하는 소리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종이 필요 없고 흔히 종소리를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은 새 성당이나 오래된 성당의 이웃이 종소리 때문에 소송을 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종은 사람들을 특히 미사에, 곧 성찬례에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종은 최초의 성목요일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하고 내리신 사명을 전하는 전령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이들은 들으십시오.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는 이들은 오십시오. 영과 육으로 궁핍한 이는 오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종소리를 흘려듣습니다. 그들은 미사 때 무엇을 기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곳에서 종지기들도 지칩니다. 종을 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전기로 작동하는 확성기의 단추조차 때맞추어 누르지 않습니다. 작고 오래된 시골 성당들을 방문하여 복사들이 상기된 얼굴로 종을 울리는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그들이 ‘최후의 모히칸족’이 되지 않기를, 아울러 그들이 종을 포함한 오래된 표징들을 다시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전위대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2012년 8월 5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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