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묵주 (1) 묵주는 나무, 유리 또는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59개의 ‘진주들’과 한 개의 십자가를 줄로 서로 연결시켜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 거룩한 표징은 묵주기도를 바칠 때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 사람들은 묵주를 손에 들고 묵주알을 손가락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기도 줄’은 그리스도교 이외의 타 종교들에서도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알라의 99개 호칭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기도줄을 사용합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아니면 묵주기도의 일부라도 바칩니다. 묵주기도 전체는 15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단은 한 번의 ‘주님의 기도’와 열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됩니다. 이 기도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관한 열다섯 단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각각 열 번의 성모송과 함께 드리는 주님의 기도를 다섯 차례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의 생애 중 한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이 각 단의 다섯 신비는 그 내용에 맞추어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나뉘게 됩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신 길의 각 단계를 묵상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자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으며, 말구유에서 탄생하시고, 성전에 봉헌되셨으며, 부모님이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피땀을 흘리시고, 매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 다시 원래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시고, 교회에 성령을 보내시고,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며 하늘에 불러 올리셨고, 성모님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어 주셨습니다. 묵주기도는 사도신경과 더불어 향주삼덕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굳건해지기를 청하면서 성모송을 세 번 바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2002년 10월)에 따르면, 묵주 기도를 많이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기존 15단으로 구성된 묵주 기도에 새롭게 예수님 공생활의 주요 사건을 묵상하도록 ‘빛의 신비’ 5단을 추천하였다. 이로써 현재 묵주 기도는 총 20단이 되며, 이 20단을 모두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2년 9월 23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연중 제25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묵주 (2)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낯설어합니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은 묵주기도가 너무 길고 단조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이 기도를 특별히 사랑하였고, 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이 기도의 의미를 해명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가 간직하고 있는 신비와 다른 신비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연결해주는 거대한 아치 아래에서 기도하는 이들은 늘 자신의 기쁨과 근심을 포함하여 자신의 기도 대상이 되는 다른 이들의 기쁨과 근심을 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묵주 알을 한 알씩 손가락으로 넘길 때마다 마음의 평화도 더욱더 커질 것입니다. 이 평화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변모시킬 것입니다. 20세기의 신비가인 슈파이어의 아드리엔느(Adrienne v. Speyr)는 처음에 그저 단조롭게 보이는 묵주기도가 입으로 하는 기도에서 묵상하는 기도로 늘 새롭게 건너가게 된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하고 권하였습니다. 초기 동방 교회의 수도회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깨닫고, 곧 끊임없이 드리는 기도를 개발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을 지향하고 호흡과 심장 박동의 리듬에 맞추어 바치는 기도로 일을 할 때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끊임없이 드리는 기도는 단순한 웅얼거림이나 하느님의 힘을 빌려 주술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기도는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의 신비 안으로 온전히 침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평화와 영적 기쁨의 원천 안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서방 교회의 카르투시오 수도승이 발전시킨 묵주기도는 이러한 동방 교회의 예수기도와 유사합니다. 이 기도는 성모님을 넘어서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묵주기도가 교회 전례의 고유한 부분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오 10세 교황은 조용하게 봉헌되는 미사 중에 묵주기도를 드리는 어처구니없는 관행을 나무라며 “여러분은 미사 안에서 기도하지 말고 미사를 기도처럼 드려야 합니다.” 하고 지적하셨습니다. [2012년 9월 30일 한가위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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