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빵 많은 민족들의 언어에는 어떤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그 사람은 빵처럼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당신의 삶을 빵과 포도주의 표징으로 압축하셨습니다.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만찬 관습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라고 하신 말씀으로 이 쪼개어진 빵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리면서 “이는 너희를 위한 나이다. 너희가 물질적 빵을 필요로 하듯, 앞으로 너희의 삶의 길에 영적 양식으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옮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쪼갬은 곧 있을 예수님의 폭력적인 죽음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동방에서는 지금도 예수님 시대와 마찬가지로 갓 구운 쫄깃한 빵을 자르지 않고 쪼개거나 뜯어서 조각을 냅니다.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도록 빵을 쪼개신, 더 나아가 조각을 내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을 통하여 쪼개어져서 성찬례 때 무한히 나누어지도록 당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에서는 매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라는 말씀이 수없이 되풀이되어 울려 퍼집니다. 전례 안에서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하고, 빵의 형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 그리스도인은 스스로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관심과 유대에 굶주린 다른 이들을 위하여 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빵의 형상을 취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인내를 다해 바치는 기도는 그러한 변화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래전부터 빵의 형상을 한 그리스도의 몸을 영성체할 때에 받아 모실 뿐만 아니라, 병자와 임종하는 이들의 영성체를 대비하여 성체를 모셔두었기 때문에, 미사 후에도 성체 앞에서 기도드리고 묵상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방문하여 경배하는 이른바 ‘감실 신심’이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매우 강력한 신앙 쇄신의 솟아오르는 샘으로 작용합니다. 오늘날 신학과 사목에 대한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흐름에 맞서 이러한 영성을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빵은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인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중국의 쌀과 에스키모인들의 물고기가 주식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빵은 여러 생필품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간식인 빵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집안에서는 빵 덩어리를 자르기 전에 십자가 표지를 그려 넣습니다. 남부 유럽으로 여행을 하면서 관광객들이 별로 모여들지 않는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관광 명소가 아닌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식사 시간에 음식에 대한 마땅한 경의를 표하는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곳에서 빵과 포도주는 일용할 양식이자 동시에 ‘거룩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를 그토록 고귀한 지위에 올려놓으신 이유를 깨닫게 해줍니다. [2012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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