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포도주 휄덜린은 자신이 남긴 시에서 남부 프랑스산 적포도주를 잔에 담긴 검은 빛이라 노래하였습니다. 햇빛이 풍부한 해안이 있는 남부 유럽과 동방에는 팔뚝만큼 굵은 가지에 포도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있거나 빽빽하게 그늘진 포도나무 숲길이 나 있습니다. 성경 시대의 팔레스티나에서는 포도나무가 한 가정의 부를 가늠하는 척도였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의 평화로운 삶을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날에 너희는 서로 이웃들을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리라.”(즈카 3,10) 성경은 잘 가꾸고 울타리로 보호되고 감시탑과 포도 압착기가 설치되어 있는 포도원을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으로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이사 5,7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 소중한 포도원의 주인이십니다. 시편 저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시편 104,15)에 대해 노래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집회서에서 예수 시라는 “술을 알맞게 마시면 사람들에게 생기를 준다.”(집회 31,27)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시대와 무관한 동방의 타 종교들에서는 포도주를 젊음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수메르인들은 포도 잎을 ‘생명’이라는 단어의 철자로 사용하였습니다. 새 부대에 담겨져야 하는 새 포도주가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였습니다(마태 9,17; 마르 2,22 참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카나 지방의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십니다(요한 2, 1-11 참조). 이 혼인잔치에서 넘치도록 주셨던 포도주는 이제 도래한 메시아 시대를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돌로 된 커다란 물독 여섯 개로 새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인 일곱은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때 내어주신 포도주가 담긴 잔이 더해지면서 분명해졌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를 위한 피다.”(마태26,27 이하) 피는 생명이고, 포도주도 생명이며, 빵도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시고, 이 생명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선물하셨습니다. 미사 때 사용되는 포도주는 그 자신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지향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만찬으로서 최후의 만찬 때 말씀하신 바로 그 생명입니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태 26, 29) 포도주는 마약일 수 있고, 지나쳐서 방탕과 소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부들이 자주 언급한 ‘멀쩡한 정신의 취기’를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 그리고 성찬례에서 포도주를 그저 마시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포도주처럼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 작별하실 때 제자들과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친 사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 포도주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계획하는 모습들의 하나입니다. [2012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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