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와 당신 죽음의 증인이 된 사람들에게 하신 이른바 가상칠언 중에 “목마르다.”(요한 19,28)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물은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불립니다. 그와 반대로 시편에서는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시편 69,2) 하고 외치는 기도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물의 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은 생명을 위한 안식처입니다. 태중의 아이는 양수 안에서 헤엄칩니다. 그 성분은 바닷물과 비슷합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지구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은 생명체의 무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생명체만 살아남은 대홍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창세 6,13-8,22 참조). 물은 갈증을 해소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주며, 수영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그러나 물은 혼란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세례 때 물이 상징하는 혼란과 죽음을 이중적 의미로 활용합니다. 지금의 세례 예식에서는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례받는 사람의 머리에 세 차례로 나누어 십자성호를 긋는 방식으로 물을 조금씩 붓습니다. 이에 반해 고대 교회에서는 성인의 경우 세례대에 몸을 완전히 담그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몸을 물속에 담그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죽음의 요람인 물의 무덤 속으로 깊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세례받는 사람이 물속에서 다시 솟아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 생명은 죄와 죽음에 대한 작은 승리의 고리가 되어, 마침내 영원한 생명이 죄와 죽음을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에서 날마다 물을 긷는 수고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한 번 마시면 영원히 갈증을 해소하는 생명의 물을 약속하십니다. 이 생명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갈증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됩니다(요한 4,7-15 참조).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초막절에 실로암 샘물을 성전에 제물로 바칠 때,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이 받을 성령을 암시하셨습니다.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물은 여기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결실인 성령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물에 대한 이러한 풍부한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태양의 찬가’에서 노래한 대로 물이라는 피조물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우리의 자매인 물을 주셨나이다. 물은 유용하고 겸손하고 귀하고 정결하나이다.” [2012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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