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기획] 신앙의 해, 대림시기 어떻게 보낼까? (1)
주님이신 그리스도 새롭게 만나는 은총의 시간 교회는 전례 안에서 새해를 밝히는 대림시기를 통해 해마다 새롭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한다. 2000년 전 오신 그리스도를 다시금 새롭게 기다리는 이 시간은 결코 지난해의 반복이 아니다. 특히 올해는 신앙의 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은총의 시간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대림시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대림시기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대림시기의 의미 뜻과 유래 대림시기의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us)는 원래 이교 세계에서 쓰이던 용어로 한 해에 한 번 신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것에서 유래, 궁중 예절에서도 주요 인사의 첫 공식방문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저서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이에 오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 말을 사용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고 세상 끝날에 구원 사업을 완성하러 다시 오심을 표현했던 것이다. 대림시기가 언제부터 교회 안에서 기념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유래에 관한 자료들도 많지 않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대림시기의 형태는 4세기경 스페인과 갈리아 지방의 풍습이다. 이 시대에는 성탄을 앞두고 6주간 참회하는 기간을 지냈으나 전례적인 요소로는 보기 어려웠다. 대림시기가 전례 안에서 거행된 것은 6세기 이후 로마와 라벤나로 당시 대림시기 역시 6주간 진행됐으나 그레고리오 1세(대) 교황 때 4주간으로 고정됐다. 그러나 로마 지역의 대림시기는 한 해의 마지막으로 그 의미도 성탄보다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쁨에 찬 시기였다. 이후 다른 지역 교회의 영향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금욕주의적 성격도 띠게 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대림시기를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전례헌장」 102항)로 표현하고 대림시기를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기로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강조했다.(「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지침」 39항) 신학 그리스도의 오심과 다시 오심으로써 완성에 이르기까지를 기념하는 대림시기의 신학은 풍부하다. 먼저 대림시기는 구원의 역사적·성사적 차원을 기념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인간 역사에 온전히 오셨다. 바로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대림시기는 구원 신비의 종말론적 차원을 뚜렷이 드러내기도 한다.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인 역사는 ‘주님의 날’(참조. 1 고린 1,8 5,5)을 향해 진행되고 있다. 대림시기는 이미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활 속에서 완성된 구원과 아직 오지 않은 세상 끝 날에 영광스러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사도 1,11)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구원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오심’에 대한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림시기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선교적 임무도 일깨운다. 선교적 임무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오심, 즉 대림에 있다. 성부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신비,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성령의 오심에 대한 신비는 교회가 선교의 의무를 갖는 것의 기초가 된다. 영성 대림시기의 영성은 기다림, 희망, 회개로 요약된다. 기다림의 태도는 곧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태도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그날과 그 시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심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다.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약의 히브리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 약속의 결정적 구현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가 대림시기의 전례 안에서 두드러진다. 오롯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한 마리아의 모습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다. 또한 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된 마리아는 구원된 인류의 첫 번째 사람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의 열매다. 따라서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대림시기와 별개의 축일로 여길 수 없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대림시기의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게 해주는 축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알리는 대림시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의 하느님’(로마 15,13)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가득한 새로운 미래를 희망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바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성취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기쁨에 찬 희망이 잘 드러난 노래는 시편 24장의 첫 소절로 사제는 대림 첫 주의 미사에 들어가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이 희망에 찬 기다림은 깨어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주님께로 향하는 회개 없이는 그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느님은 당신과 친교를 맺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당신에게서 멀어진 사람이 다시 당신께로 향하도록 끊임없는 회개를 촉구한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뤄지는 이 회개로 인간은 죄스러운 처지와 한계를 뛰어넘어 용서를 받고 자유를 누린다. 대림시기는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는 시기다. 그래서 대림 제2주일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나온다.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며 주님의 길을 닦은 세례자 요한은 장차 올 하늘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회개할 것을 강조했다.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대림시기의 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대림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미’ 완성된 구원과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의 ‘아직’ 사이에서 이 세상을 순례하는 그리스도인은 깨어 기다리면서 신앙의 자세를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2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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