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소금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제자들과 가난하고 겸손한 많은 군중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세상의 빛”이고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이라고도 하셨습니다(마태 5,13 이하 참조). 이는 엄청난 주장인 동시에 커다란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을 위한 양념이어야 합니다. 소금을 양념으로 쓰려면 양을 정확히 맞춰야 합니다. 양이 부족하면 국물이 싱겁거나 아니면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됩니다. 확고한 신앙심을 지닌 그리스도인이 없는 곳에서는 도덕적 진공 상태가 발생하여 냉정과 권태가 퍼지게 됩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도 국물 맛을 망쳐 버립니다. 소금기를 너무 과도하게 함유하고 있는 사해(死海)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글자와 정신, 율법과 복음, 법과 사랑 사이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염장’(鹽藏)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단순한 도덕군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감싸 안는 강한 힘을 지닌, 사랑으로 사랑하는 성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사회에서 양념을 치는 소금이기 위하여 필요한 힘을 잃어버릴 위험에 늘 처해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이미 첫 세대에서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 이하) 하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아무런 맛을 내지 않는 물에 비교됩니다.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의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은 사랑이 결여된 바리사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셨던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 내용은 마태오복음 23장 전체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과 사회에 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는 세상과 사회가 맛나도록 하고 썩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성인 예비신자들은 일 년 또는 이 년 동안에 걸쳐 세례를 준비했습니다. 세례를 준비하기 위한 이 오랜 과정에 소금 수여 예식도 포함되었습니다. “지혜의 소금을 받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예비신자의 혀 위에 소금 알갱이를 얹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사람이여, 그대는 소금과 빵과 빛이 되거나, 될 수 있거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라는 말로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과 함께 소금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세례 예식에서 소금 수여는 더 이상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듣기만 할 뿐 아니라 맛볼 수도 있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육화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2012년 12월 9일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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