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기획] 신앙의 해, 대림시기 어떻게 보낼까? (3 · 끝) 대림시기의 풍속
구유 만드는 풍속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유래 - 구유. 신앙의 해, 대림시기 어떻게 보낼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신앙의 해 제정 자의교서 「믿음의 문」 14항에서 야고보서를 인용하며 믿음의 실천을 통해 “신앙의 해를 더욱 힘차게 사랑을 증언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것을 당부했다. 대림시기의 의미와 전례를 잘 알고 기도생활에 매진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지만 실천이 뒤따른다면 더욱 풍성한 신앙 속에 대림시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역사 속에 대림시기를 거치며 대림시기를 뜻깊게 보내고자 노력하는 신자들의 실천은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원칙과 지침」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대림시기와 관련된 대중 신심 표현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며 “이렇게 표현된 대중 신심은 신자들의 신앙을 뒷받침해 줬다”고 밝혔다. 대림시기의 다양한 풍속을 살펴보면서 대림시기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보자. 구유 만들기 대림시기에는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구간과 구유의 모형을 만든다. 말구유에서 예수가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은 사실 구유를 만들기 전부터 행해지던 일이다. 이미 2~3세기경 박해시대에 그림이나 모자이크 등으로 구유에서 탄생한 예수를 표현했는데 카타콤바의 여러 곳에서 박해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구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구유를 만드는 풍속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유래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3년 이탈리아의 그레치오 성당에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어 공개했다.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의 허락을 받아 만든 이 구유를 계기로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풍습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됐다. 전통적으로 구유에는 아기 예수 옆에 소와 나귀가 있고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 동방박사들이 있다. 대림시기에 모형 마구간과 구유를 만들고 성탄전야에 구유에 아기 예수의 상을 모시는 구유 안치식과 구유 예절을 하며 성탄 후 주님 공현 대축일에 동방박사들의 상을 놓는다. -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가 제작, 판매하는 유아를 위한 대림달력. 대림달력 대림달력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달력으로 일반 달력과는 달리 1~24일의 날짜만이 적혀 있다. 대림시기 동안 성탄의 기쁨을 준비하고 묵상하며, 보속과 회개의 표시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대림달력에는 각 날짜에 적힌 금언이나 성경구절에 따라 착한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또 선행과 기도에 관련된 그림을 넣어 성탄 구유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졌다. 대림시기 동안 선행과 기도를 어린이들에게 교육하는 대림달력의 전신은 중세 수도원학교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림달력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다. 주로 유럽에서 많이 쓰이는 이 대림달력은 어린이들에게 대림시기의 의미를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자리 잡은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달력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올해 대림시기에는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담당 박종수 신부)가 유아를 위한 대림달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숙소찾기와 대림 행렬 대림시기 세계 각 국에서는 행렬을 통해 구세주의 임박한 탄생을 알리며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곳을 찾아 헤매던 일을 재현하고 있다.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지역에서는 ‘숙소찾기’(Herbergsuche oder Frauentragen)를 시행하는데 대림시기 동안 마리아와 요셉상을 집마다 하룻밤씩 돌아가며 모시고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숙소찾기와 대림행렬과 같은 풍습이 대중적이지 않지만 대림시기 신자들이 집마다 돌아가며 기도하는 ‘대림기도’는 숙소찾기의 모습과 유사하다. 비록 같은 풍습에서 유래한 기도모임은 아니지만 신자들의 집을 방문하며 대림기도를 할 때 베들레헴에서 빈 방을 찾아 헤매던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묵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대림 기획] 대림시기의 성인, 성 니콜라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에 빛 · 희망 전해 현대인들에게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니콜라오 성인은 지금은 성탄의 상징으로 유명하지만, 성인의 축일은 12월 6일로 축일과 그의 생애를 돌아봤을 때 성탄의 성인보다는 대림시기의 성인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성덕과 신심, 기적 등으로 유명했던 성인은 4세기경 리키아의 미라(Myra) 주교로 활동했던 성인이다. 성인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기간 투옥되기도 했고 니케아공의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니콜라오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기록과 자료보다는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성인은 부모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자선활동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성인의 자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야기는 가난한 세 처녀의 전설이다. 가난한 집안의 세 처녀는 지참금 문제로 팔려나갈 위기에 처했다. 세 처녀의 곤경을 안 성인은 그 집에 세 번에 걸쳐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넣어줘 팔려나가지 않고 혼인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전설이다. 또한 죄 없이 사형대에 오른 세 장군을 구출하거나 조난선원을 구하거나 3명의 어린이를 살려낸 전설도 유명하다. 이런 활동들로 성인은 어린이와 죄수, 뱃사람의 수호성인 등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19세기경부터는 성탄을 맞은 어린이들에게 부모가 직접 선물하는 대신 니콜라오 성인의 이름을 빌리기 시작했다.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니콜라오 성인의 별칭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성 니콜라오’의 네덜란드어 ‘신터 클레스’(Sinter Claes)가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붙은 이름이다. ‘산타클로스’의 붉은 옷은 주교복을 상징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니콜라오 성인을 두고 “그의 기적은 변함없는 매일의 선행이었다”며 “전 생애가 착하고, 매일을 신앙으로 살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명백한 기적이다”라고 그의 삶을 표현했다. 니콜라오 성인은 가난한 이, 박해받는 자,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전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한 성인이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인의 자세야말로 대림시기를 보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세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16일, 이승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