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재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이하던 해인 973년 83세를 일기로 선종한 아욱스부르크의 성인 울리히(Ulrich) 주교와 관련해서 전기작가 게브하르트(Gebhard)는 “주교는 그날 새벽 동트기 전에 재를 십자가 모양으로 바닥에 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재에 성수를 뿌리고 당신의 몸을 뉘었다. 그렇게 동이 틀 때까지 누워 있는데, 사제들이 호칭기도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데려가셨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 종교와 문화에서 재는 죄와 죽음과 관련된 표징입니다. 성경이 소개하는 인간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하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전례는 매년 재의 수요일에 이 말씀을 되풀이합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을 때와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때 이를 기억하도록 그들의 이마에 재로 성호를 그으면서 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가 드러내는 표징은 모든 것이 끝장나는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조건인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를 머리에 얹을 때 하는 말은 원래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오 인간이여, 그대는 재에 불과하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임을 잊지 말아라.” 이 진리의 후반부를 교회는 사순시기가 끝나고 부활절을 맞이할 때 선포합니다. 재는 무엇을 더럽힙니다. 하지만 흙이나 진흙보다는 쉽게 털어낼 수 있을 만큼 가볍기도 합니다. 재는 불로 정화된 흙의 요소입니다. 고대의 전설에 따르면 불사조가 재에서 새 생명을 얻어 나왔다고 합니다. 불사조는 재를 뒤에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하여 자신의 역사인 흙과 재가 심판의 불꽃을 거쳐 정화된 후 하느님 곁에 올라 영원히 머물게 된다고 믿습니다. 예전에는 성당 봉헌 때에도 재가 사용되었습니다. 재를 바닥에 대각선 십자로 뿌려, 그것이 성당 내부의 귀퉁이에 위치하는 들보를 가리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주교는 지팡이로 이 십자들보에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썼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들보에 라틴어 알파벳으로 A에서 Z까지 썼습니다. 덧없이 바람에 날아가는 먼지 안에 영원을 갈망하는 조망을 새겨 넣은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 삶과 노고에 대한 가시적 무상함의 상징은 초월을 지향하는 암호가 되었습니다. [2013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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