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1) 미사 거행의 진행 과정을 지시·설명하는 미사 통상문을 펴 보면 그 첫 항에 「교우들이 모인 다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공동체의 모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비오 5세 미사경본(1570)은 오직 사제에 대해서만, 사제는 제의실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 즉 어떤 색 제의를 입어야 하며 제단으로 걸어 나갈 때 어떤 몸짓과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언급하였습니다.(눈은 내리 깔고, 몸을 바로 세우고 품위 있는 걸음걸이를 할 것) 이에 비해 새 미사경본의 첫 말은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와 함께 제대로 나아가고 교우들은 입당송을 한다.(미사 통상문 1항)”입니다. 미사를 주례한다고 여겨지는 사제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공동체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벌써 모인 신자 공동체에 특별한 품위가 주어진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20)하신 주님의 약속이 모인 공동체에 적용됩니다.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하느님 백성 공동체는 주님 앞에 서서 그분께 봉사하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미사에 대해서 말하는 초대교회 문헌 중 의 하나인 디다케(Didache, 일명 열두 사도의 가르침)라는 문헌은 벌써 이 모임(집회)을 구원된 교회의 표상으로 보고 수많은 밀알, 빵이 된 밀알로 표현합니다. “이 빵 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9, 4) 옛 동방교회는 성찬례를 “시낙시스(Synaxis)”, 곧 ‘집회, 모임’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사제와 복사들이 제단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모인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일차적이며 결정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더욱 잘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성경에 「공동체」라는 용어를 희랍어 원문으로 에끌레시아라 표현했고 라틴어 번역문에는 이 희랍어를 외래어로 그대로 받아들여 단지 억양만을 달리하여 ecclesia라고 표기했습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희랍인들이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이 용어로써 어느 종교적 집회를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느 한 도시민들의 모임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집회」라는 이 말을 응용하여 한 곳에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뜻하고 또 세상 각지에 흩어져 살지만 전체적 교회를 형성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신 것을 듣고 그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역시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란 공동체라는 뜻이며 공동체는 바로 경신례를 위한 집회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모인다」는 의미를 알아들었다면 우리 성찬례의 형식에 관한 많은 사항들이 명확해질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다음 세 가지 점만을 제시하겠습니다. 첫째로 미사 집전이 그 외적 현상으로 보아 공적 집회라고 한다면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거기서 사적으로 기도를 한다든지 혹은 고요히 묵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듣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침묵도 지켜야 합니다. 사제는 여기서 ‘자기의 미사’를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가 미사를 함께 거행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사제 혼자 하는 개인 미사를 금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조: 총지침 254항) 세상의 여타 다른 집회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역시 역할이 분할되어 있습니다. 즉 어느 사람은 집회를 주관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함께 성가를 부르며 또 다른 사람들은 독서를 하거나 집회를 지휘하며 선창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하나의 단체, 공동체로서 기도하고 노래하고 듣고 응답하며 봉헌하고 성찬을 거행합니다. 공동체가 아니라면 이러한 일은 전혀 시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의 자의적인 여러 모임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거리에서 음악 공연을 하거나 새로운 물건을 선전할 때 서서 구경하는 보행자들의 운집도 있는가 하면 음악회, 결혼식, 장례식을 위해 모인 집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질 그룹의 사람들이 가지는 자주 또는 규칙적인 모임도 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어떤 질서를 위해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규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모여 와서 집회가 끝나기 전에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교향곡을 연주할 때에도 그 첫 악장에서가 아니라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박수갈채를 하는 것도, 어느 죽은 자를 위한 고요한 묵념을 할 때 모든 이가 서고 또 강연을 들을 때에는 모든 이가 앉는다는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의 규칙적인 미사 집전도 이와 비슷합니다. 즉 우리도 미사 중에 주의 깊게 경청하기 위해서 어느 일정한 순간에는 앉고 우리의 존경심과 준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설 때도 있으며 또 경배하기 위해 무릎을 꿇을 때도 있습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에도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다. 이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각을 표현해주고 길러 준다.”(42항)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모든 집회는 개회와 폐회라는 매우 규정된 범위를 가집니다. 따라서 미사 집전도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이 있습니다. 시작 예식에서 공동체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당신 이름으로 모인 자들 가운데 함께하시겠다고 한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성찬과 제사가 거행되는 제단은 그리스도의 표징입니다. 우리가 미사를 위해 모일 때 내적으로 정신 집중하여 함께하시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사 전에 침묵의 기도를 위한 시간은 장차 여기서 이루어질 사건을 위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입니다. 미사 거행을 위해 함께 모인 집회는 그들 중 한 분이 주관자로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로 가서 그리스도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제는 축일에는 분향으로써도 존경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그분을 중심으로 한 집회입니다. 시작 예식은 입당성가, 사제의 제대 인사(분향 포함)와 십자성호, 그리고 공동체에 인사, 미사 인도와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호부터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월간빛, 2013년 2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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