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십자성호 (1) 저는 몇 해 전 당시 공산 치하에 있던 나라를 방문하여, 정교회 대성당 입구를 들어서면서 동방교회의 관습대로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십자성호를 긋는 제복을 입은 군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그 젊은이에게 위험한 일이었으며, 동시에 서방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젊은이가 신앙을 위하여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성호를 긋는 것은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에서 가장 흔하게 신앙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성호를 긋거나, 이마에서 가슴 그리고 두 어깨 사이에 커다랗게 성호를 긋습니다. 성호를 긋는 것은 삼위이신 하느님께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십자성호는 자신이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고, 또한 이 표지를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운동 경기를 중계하는 텔레비전에서 시청자들은 점프하기 전의 스키 점프 선수나 경기 시작 전의 축구 선수가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호를 긋는 선수들은 대개 라틴 국가 또는 슬라브 국가 출신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특별히 힘든 도전에 직면할 때 십자가로 자신을 축복하도록 가르쳐 주었기에 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성호를 긋기 전에, 그가 세례받을 때에 다른 사람이 그에게 성호를 그어주었습니다. 어린이 세례 때에는 세례식 주례자나 부모, 대부모 또는 가족들이 아이에게 성호를 그어줍니다. 전례적 훈련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성호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엄숙하게 그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성호를 긋는 방법을 더 이상 가르쳐 주지 않는 사실 때문에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더 나아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성호를 그어 축복하는 일에도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종교교육의 현장에서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호는 사람만이 아니라 물건에도 긋습니다. 그 결과 그 물건들이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되어, 축복을 받거나 축성되는 것입니다.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십자성호 (2)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발발하기 직전 독일 작가 테오도르 헤커(Theodor Haecker)는 만일 피난을 가야만 한다면 무엇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지 자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답하였습니다.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항상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십자가를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영국인 에블린 워프(Evelyn Waugh, 1903~1966년)는 그의 소설 다시 찾은 브라이스 헤드에서 임종 때 긋는 성호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임종을 맞이하기 위하여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한 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귀족은 가톨릭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그를 방문하려는 사제도 거부하였습니다. 작가는 신앙에 대한 열정이 식은 친척들의 행동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그를 자극하지 않고 그저 교회가 늘 하던 대로 관습적인 것만을 하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제도 최대한 늦게 부릅니다. 그 귀족은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제가 그에게 자신의 일생에서 지은 죄를 회개한다는 뜻을 표시하라고 권유해도, 그 귀족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사죄경을 외우고 그의 죄를 용서하고 그의 이마에 도유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죽어가던 귀족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힘들게 손을 이마로 가져갔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이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 귀족이 성유를 이마에서 씻어내는 신성모독을 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 귀족은 천천히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가 버렸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신앙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워프는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교회를 향한 자신의 길이 확실하게 결정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례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성호를 긋는 예식과 다른 사람이 성호를 그어주는 예식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동행하며, 그 삶을 보호하는 외투처럼 그를 감싸줍니다. [2013년 3월 24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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