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기도 드리는 손 (1)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면, 그의 손이 열린다고 합니다. 이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자기 포기를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자세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관행에 따르면 죽은 이의 펼쳐진 빈손을 다시 기도드리는 형태로 가지런히 모아 놓습니다. 흔히 이 손을 묵주로 감싸기도 합니다. 가지런히 모으고 전혀 움직임이 없는 죽은 이의 손을 바라보며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지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손이 간직하고 있었던 상징적 힘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손은 무엇에 필요합니까? 몸의 이 부분은 무엇에 필요한 것입니까? 표정과 마찬가지로 손으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원학적으로 손(Hand)이라는 단어는 고트족 언어의 ‘히르판’(hirpan)이라는 단어와 연관됩니다. 이 단어는 ‘잡다’, ‘쥐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은 잡거나 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섬세한 신체의 일부인 손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잡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필요한 물건을 받고, 쥐고, 변형하기 위하여 손으로 잡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을 연장해주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도구들도 손으로 잡습니다. 아울러 사람은 자기의 손을 이웃을 향해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서로 도와주기 위한 의도에서, 아니면 적대적인 의도에서 다양하게 손을 펼쳐 보입니다. 이처럼 도움을 주고, 치유하고, 선물을 주는 어머니 또는, 의사의 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와는 달리 거절하고, 때려 부수는 폭력의 도구로 드러나는 손은 자기의 동생 아벨을 살해한 카인의 손을 연상시킵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에서 손은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내하는 사람인 욥에게 그의 친구가 “자, 불러 보게나. 자네에게 대답할 이 누가 있는지”(욥 5,1)라고 말합니다. 조각가 에른스트 발라크(Ernst Barlach)는 손으로 귓바퀴를 감싸서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는 데 몰두하는 욥의 모습을 조각하기도 하였습니다. [2013년 4월 7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기도 드리는 손 (2) 합장하는 손은 기도하는 몸짓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는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성모님을 이러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어 자신의 몸의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하는 곳에서 초월의 영역을 향하여 하나로 모은 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입니다. 청원과 감사와 공경으로 인간은 자신에게서 초월하고, 자신을 자기 안에만 가두어 두는 치명적인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인간이 자신의 몸에서 앞으로 내밀거나 당신이라 부르는 하느님을 향하여 위로 뻗으며 벌린 텅 빈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기다리는 접시와 같습니다. 베르너 베르겐그루엔(Werner Bergengruen)은 자신의 시에서 “하느님, 빈손을 사랑하소서.”라며 노래했습니다. 사제 역시 전례 때에 손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림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손에 무엇인가를 가득 들고서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희가 갑니다. 환호하며 저희의 예물을 바치러 갑니다!” 이 예물은 인간 노동과 하느님 은총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동방 교회에서는 전례 때 예물을 봉헌하면서 “저희는 주님의 것들 중에서 주님의 것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찬미에서 완성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자신의 저서 "신국론"의 결론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쉬면서 보리라. 보면서 사랑하리라. 사랑하면서 찬미하리라. 끝없는 끝에 이루어질 것이 바로 이렇다! …” [2013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기도 드리는 손 (3) 인간은 손으로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피조물인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입으로만 찬미하지 않고 온몸의 언어로, 아울러 손의 언어로도 찬미합니다. 우리는 시편 47장에서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시편 47,2)라고 노래합니다.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청원하고 찬미하는 인간의 손은 성경의 비유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손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 그림에서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손과 창조된 아담의 손이 서로 가까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약 200여 구절이 하느님의 손에 관해 언급합니다. 하느님의 손은 땅을 만들고 하늘을 열었습니다. 하느님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내었습니다. 하느님의 손은 예언자 에제키엘에게 내려 그를 눌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손으로 잡으셨습니다. 장님의 눈, 심하게 손상된 지체,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혀를 만져 치유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교회는 특히 이러한 행동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2013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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