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표징과 상징] 불 (1) 불은 열정과 빛의 근원이기에 애덕의 상징이며 사랑의 열정과 용기를 상징합니다. 애덕의 불은 마음을 불태우면서 우리 사회를 자주 괴롭히는 무차별과 냉정을 극복합니다. 또 불은 주변의 사람들을 모으고, 주의를 끄는 힘을 가집니다. 사랑의 선교인 하느님 아드님의 선교는 예수님 자체에서 일어난 불과 비교됩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애덕은 세 가지 신학적 덕목 중 하나이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으로 애덕을 제시하십니다(마태 22,36-40).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기준도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13)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4-45) 애덕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로마 12,9-10).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코린 13,4-7). 우리 서로 이러한 차원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히브 10,24) 또한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1-12). 애덕이 우리 안에 성장하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이 좋은 씨앗처럼 영혼 안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으려면, 모든 신자가 각기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채워 드려야 하며, 성사들, 특히 성체 성사와 거룩한 전례에 자주 참여하고, 기도와 극기, 형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봉사와 모든 덕의 실천에 꾸준히 헌신하여야 한다.(「교회 헌장」 42) [길잡이, 2013년 2월호,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전례의 표징과 상징] 불 (2) 요한의 첫째 서간에서 기억하듯이(4,18 참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불은 하느님의 현존과 연관되고 그분의 현시와도 연관되는 상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탈출 3,2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비추어 인도해 주셨습니다.(탈출 13,21 참조) 불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11) 성령께서는 불꽃 모양의 혀들로 나타나 각 사도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2-4) 성령의 임무는, 하느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달구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는” 분이 되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인간의 구원자」 10)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눈이 열릴 때 열정이 타오릅니다.(루카 24,32 참조)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한 전례의 순간들에서 재해석됩니다. 우리는 부활 성야 예절에서 부활초를 점화하는 불을 지핍니다. 이 불은 어두움에서 빛이 승리함, 이기주의에서 사랑이 승리함을 드러냅니다. 성전 봉헌식에서도 역시 성체성사의 희생을 완성할 장소로 하느님의 정화 현존의 상징인 제대 위에 촛불을 켭니다. 이렇게 부활초와 초에 점화된 불꽃은, 항상 준비하며 등을 들고 주님을 기다렸던 슬기로운 처녀들의 신앙과 같이 변하지 않는 인내의 신앙을 상징합니다. [길잡이, 2013년 3월호,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