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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4) 참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7 조회수3,871 추천수0

[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4) 참회

 

 

인간은 자신이 연약하고 쉽게 잘못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세상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무질서해지고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깨뜨려져 갑니다. 많은 경우 세상의 악이 선을 이기고 불의가 정의를 짓밟습니다.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 인간이 서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세상은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행동 여하에 다른 사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방해도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도움과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에 거룩한 미사 전례 문턱에 공동 죄고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합당한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이제 사제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참회를 권합니다.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실로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어느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안에 내재하고 인간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결과들로 인해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불평불만, 편견, 만용, 무질서, 공포, 고독, 쾌락주의, 이기주의, 미움과 증오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활 안에서 드러나고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선행을 저지하며 사랑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세례자 요한은 악의 세력이 인간으로부터 기인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사악함을 거듭 파헤치고 그로 인하여 기인된 멸망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도 악하고 불의하고 이기적이고 쾌락에 빠진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할 때에만 그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2000년 대희년에 세계사 안에서 저지른 교회의 잘못을 고백하고 겸손되이 용서를 청한 모습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죄를 지었고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잘못한 모든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들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뉘우칩니다. 그러므로 죄고백 권고 후에 행하는 침묵은 우리 스스로의 지난 잘못을 알아내고 생활을 반성케 하여 주님을 받아들이도록 준비하게 합니다. 침묵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게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침묵을 잃어버리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침묵과 반성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하느님과 이웃을 다시 찾게 만들어줍니다.

 

교회 안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믿는 이들 사이에서도 신앙의 가치가 늘 살아있지는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 신자들이 성찬례를 위하여 함께 모였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생활했다고 전하지만 실상 형제들이 함께 살아가고 또 개인적 생활을 해 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형제들 간의 분열과 미움, 이기주의에 대하여 한탄하면서 「그들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요구사항」을 단호히 제시하십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 안에서조차 순수한 형제애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권력 다툼, 선입견과 미움, 내침과 편가름, 그리고 긴장과 갈등의 행위를 서슴없이 행합니다. 인간은 간교하고 악을 즐겨하며 권력을 탐하고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잘못과 죄악은 인간을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로부터 분리시켜 놓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악을 제거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련한 처지를 함께 큰 소리로 외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외침을 공동 죄고백으로써 때로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는 주님께 죄를 지었나이다.”(참회. <나> 양식)하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의무를 소홀히 하고 묵묵부답하고 선행을 하지 않았고 또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결핍되어 있으며 온전히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 비유에서 부자의 잘못은 자기 집 대문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라자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그분과의 친교를 끊어 버렸으며 우리 스스로를 하느님 보호의 손길에서 피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 또 단체로 크고 작은 일에 악의 세력에 물들었고 선을 도외시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와 그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적 복음과 행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파스카 신비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파스카 신비 축제의 중심이며 우리를 하느님의 영광에로 인도하기 위하여 이 축제 안에 다시 오십니다. 미사전례 시작 때 우리가 행하는 죄고백은 전적인 회개의 표현이며 우리를 형제자매들로 하느님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의 일치로 이끌어 줍니다. 참회의 행위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밝혀 주고 정화시키며 참된 사랑을 위해 자신을 개방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참회에서 부당함을 고백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의인이라는 생각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얼마나 이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1요한 1,8)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거룩한 미사전례 시작 때 자신의 잘못들을 알아내어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청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또한 필요합니다. 난류와 한류가 교류하는 곳에 어족이 풍부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는데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풍성할 것입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의 밝음이 환히 드러나듯이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할 때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리스도인 중에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 잘 드러납니다. “무엇을 고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았고 더욱이 살인도 하지 않았으며 아내와 남편 외에 다른 사람과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주일미사를 궐하지도 않았습니다.”와 같은 말을 쉽게 합니다.

 

이에 대해 새로운 고백의 기도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우리가 자비로운 행위를 소홀히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척도와 받침이 되지 못했었다는 데 우리의 잘못이 있는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고백의 기도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와 형제자매들이 나를 위하여 우리 주님이신 하느님께 전구해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로 끝맺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죄악과 공동체적 잘못을 시인하고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인간적 행위이자 하느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고백과 용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회의 예절을 바칠 때는 특별히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그분과 화해를 이루고 또 우리가 서로 화해를 이루기 위해 미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참회의 예절 대신 「성수 예식」을 거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예식은 참회예식의 제4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절의 뜻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자들이 받은 세례성사를 기념하는 데에 있습니다. 세례성사의 효력은 언제나 우리 안에 머물러 있고, 또한 그 때문에 우리는 계속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세례성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순절과 부활절에 이 예절을 거행하기를 적극 권장합니다.

 

[월간빛, 2013년 5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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