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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를 살다: 미사의 시작 예식 (5) 자비송(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6 조회수4,148 추천수0

[전례를 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미사 시작 예식 부분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노래하거나 낭송할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느낄까요? 아마도 우리 중의 대다수는 자비송을 노래하거나 낭송할 때, 마치 공동 죄고백을 할 때와 같은 처지와 감정에 사로잡혀 자비송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자신의 잘못이나 죄의 용서를 간청하는 청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기도가 청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자비송은 죄고백과는 달리 아버지이신 성부께 향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향한 외침입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환호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외치는 자비송 환호가 예리고 근처에서 예수님이 병을 낫게 한 눈먼 바르티매오의 외침과 관련시켜 볼 수 있습니다.(마르 10,45-52)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자기 옆을 지나가시는 분이 나자렛 예수라는 것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바로 주님이 자기 곁에 계시다는데 대한 놀라움과 함께 환호를 올립니다.

 

자비송의 첫 마디 “키리에(주님이시여)”는 우선적으로 우리 미사 집회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대한 고백이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공동체의 대답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분은 분명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키리에” 환성으로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키리오스(주님)” 라는 용어는 본래 동방과 로마 문화권에서 시행되던 제왕 숭배 사상에서 유래되었고 왕인 황제를 경배하던 종교적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이미 고대 이교문화시대에 이 호칭은 신들이나 숭배하는 통치자를 신(神)으로 찬송하는 환호이자 인사였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황제가 어떤 지방을 방문하게 되면 황제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키리에 엘레이손!”하고 소리쳐 외쳤습니다. 이 말은 “황제시여, 굽어 살피소서!”하는 의미를 가진 환영의 인사였습니다. 이 인사가 미사 안에서 왕 중의 왕(王中王)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환호로 사용되었습니다.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들은 그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께 이와 같은 환영과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교 박해시대인 초세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신(神)인 황제에게 분향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면 이 키리오스(주님)는 그 당시 참된 신(神)이신 그리스도께 향하는 자각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자비송의 두 번째 말마디(eleison)는 신의 자비를 간청하는 외침입니다. 소경과 절름발이, 나병환자와 죄인들이 한때 주님께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도록 간청했으며 주님은 당신을 자비심이 많으신 분이심을 드러내 보이셨듯이 그렇게 오늘날 우리들도 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운데서 왕이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그분의 자비를 호소합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자비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기도는 상당히 애매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키리오스)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 라는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의 말씀처럼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키리오스, 곧 주님이 되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키리오스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부활로 획득한 영광과 왕좌에 좌정하신 왕,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버지 하느님께 나가기 전에 우리의 머리시요 영광 중에 계신 왕이시며 주님이신 키리오스, 그리스도를 환호하며 그분께 경배하여 청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키리에”는 근본적으로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간청하는 애소(哀訴)가 아닙니다. 이 노래는 죄인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 여기 계심을 환호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밝고 힘차게 바쳐야 하며 기쁨과 존경을 동시에 표시하는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흔히 이와는 정반대되는 기분으로 이 기도를 바칩니다. 중세기의 우의적 해석에 따르면 이 기도는 구약시대, 즉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시기(待臨時期)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으로 노래했습니다. 게다가 현재 이 기도는 순서상으로 참회의 예절 다음에 따라오기 때문에 마치 죄를 고백한 다음 용서를 비는 기도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비송을 노래로 작곡하는 사람들은 이런 오해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단조가 아니라 장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사경본은 통상적으로 공동체가 자비송에 함께 참여하는데 뜻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찬미는 깊은 겸손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청원은 자연적으로 그를 들어 줄 사람에 대한 신뢰심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청원은 모두 우리 자신이 향하고 있는 그분께 드리는 찬미입니다. “키리에” 노래가 청원을 담고 있는 기도이지만, 그러나 이 청원은 승리자시요 왕이시며 죄악과 죽음을 쳐 이긴 분,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인 것입니다. 미사 전례 시작에 하는 우리의 이 인사는 그리스도를 향하는 그분의 현존에 대한 기쁜 환호성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유일한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자비송은 일반적으로 각각(Kyrie, Christe, Kyrie) 두 번씩 노래합니다.

 

[월간빛, 2013년 6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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