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예수가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심' 기려 - 피테르 아르트센의 '동방박사의 경배'. 1560년작, 168×179㎝. 5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뒤 일어난 첫 번째 사건은 동방에서 세 박사가 황금과 유향, 몰약을 들고 예수ㆍ요셉ㆍ마리아의 성가정을 찾아온 일이다. 공현(公現)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나타나다'는 뜻으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삼왕(三王)으로도 불리는 세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경배함으로써 예수님이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기리는 대축일이다. 유래와 역사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테오파니아'는 출현을 뜻하는 동사 '에피파이노'에서 파생한 말로, 왕이나 황제가 오시는 것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드러나게 밝혀진다는 의미와 스스로 드러내는 것, 유명한 존재로 오심 등을 의미한다. 동방교회는 이 단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님 성탄 축일에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내는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확장돼 드러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서방교회에서는 동지 축제(태양신 탄생 축제)를 12월 25일에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에서는 같은 축제를 1월 6일에 지냈는데, 오늘날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에 지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낮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맞아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기리려 했다. 이날을 대축일로 지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참 빛'이심을 자연스레 드러내려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전통이 있는데,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날 주님이 세상에 드러나심을 기념해 큰 차례상을 차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찍부터 1월 초에 주님의 공현을 기념한 동방교회와는 달리 서방교회가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부터다. 최초로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했다고 확인할 수 있는 곳은 361년 갈리아 지역으로, 아주 성대하게 공현 대축일을 지냈다. 당시 살라미스의 성인 에피파니오는 이날을 "주님의 오심 또는 주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심과 완전한 육화를 기념한다"고 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4/354?~407)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에서도 이 축일을 지냈는데,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했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을 '빛과 물의 축제'라고도 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께서 메시아로 드러나셨음을 기념한다. 아울러 예수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드러난 그리스도의 공적 역할에 대한 축하를 거행하는 것이다. 한편 서방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동방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성탄 축일로 지냈다. 그러다 동방교회 공현 축일이 서방에 전파되자 의미 변화가 일어나 동방 박사들이 구세주를 경배하러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하게 됐다.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또한 서방교회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이해했다. 따라서 예수께서 모든 민족의 주님으로 드러나셨다고 보았다. 축일과 신학 원래 축일은 1월 6일이지만 사목적 편의를 위해 1월 2~8일 사이 주일에 지낸다. 서방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날을 동방 박사들의 축제로 지냈다. 그래서 구유를 꾸밀 때도 성탄 때는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 목동과 가축들을 놓았고, 공현 때가 돼서야 동방박사 형상을 배치했다. 부활 시기가 성령 강림 대축일로 완성되고 마감되는 것처럼, 성탄 시기를 마감하는 축일로 1960년 '주님 세례 축일'을 따로 설정해 공현 다음 주일에 거행하도록 했다. 기억해야 할 법칙이 하나 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주일에 지내는 경우 그 날이 1월 7일 또는 8일이라면, 주님 세례 축일은 그 다음 주일이 아니라 하루 뒤인 월요일에 지낸다. 올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5일이어서 바로 다음 주일인 12일을 주님 세례 축일로 지낸다. 축일의 전례 이날 미사 전례 중 제1독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를 기록한 이사야서(60,1-6)를 봉독한다. 시간 전례에서도 구약 독서(이사 60,1-22)를 읽는데, 복음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제2독서(에페 3,2-6)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위시해 이방인들까지 하느님 축복을 받는 약속의 상속자로 만드시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됐음을 설명한다. 이날 전례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빛'으로 널리 계시됐다는 데 있다. 구약의 독서를 통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신약에 와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베들레헴의 별빛은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빛임을 알려 준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5일,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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